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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언론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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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언론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

입력
2005.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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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復古)의 욕망으로 몸이 단 우익 만담가들의 엄살과 달리, 오늘날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는 극성기를 맞은 듯하다. 올드미디어든 뉴미디어든, 거대자본 매체든 소자본 독립매체든, 제 하고 싶은 말을 못해 끌탕을 하는 언론은 없어 보인다. 이제 한국의 언론을 규제하는 것은 자본의 운동력과 언론인 개개인의 양심 또는 셈속 뿐이다. 1988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디어 대부분이 정치권력의 직접적 통제 아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 언론이 누리는 거의 무제한의 자유는 정녕 놀랍다. 언론은 그 자신 크게 기여한 바 없는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수혜자다.

그러나 한국 언론이 커뮤니케이션의 공변된 매개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특정한 정파나 계급집단에 동화되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일반 언로가 되고자 하는 언론을 찾기는 쉽지 않다. 1987년 시민항쟁의 결과로 표준적 선거제도가 복원되자마자, 몇몇 신문은 그 시기의 지배적 정파와 몸을 섞으며 수구 신성동맹의 일원이 되었다. 당초엔 동맹 내부의 하위 파트너였던 이 신문들은 강준만이 ‘권력변환’이라고 부른 과정을 거치며 수구동맹 전체를 지휘하는 상위 파트너가 되었다. 거침없는 막말로 신문언어의 음역(音域)을 넓히는 데 크게 이바지한 한 신문은 87년 이후 네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그 자신이 언론기관이라기보다 정치집단이라는 것을 주저 없이 드러냈다.

언론의 정치세력화가 수구진영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해직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6월항쟁 이후 창간된 국민주 신문이 특정 중도정파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류 언론 다수가 수구동맹의 일원이었던 상황에서 이 신문의 중도정파 감싸기는 균형을 위한 일종의 에누리라고도 볼 수 있었고, 그 점에서 정의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주류 언론과 대항 언론의 정치적 편향은 오래지 않아 초기의 비대칭성을 치유했다. 올드미디어의 주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구동맹에 속해 있지만, 온라인매체의 주류는 개혁 담론에 휩쓸려 여권과 어깨를 겯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정파가 언론행위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홍보가 곧 정책’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 한편, 형식의 신구(新舊)를 가리지 않고 언론 전반이 자본에 깊이 포섭되고 있는 것도 민주화 시대의 특징적 현상이다. 오늘날 주류 매체는 대체로 총자본의 일원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매체의 논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이제 정부의 의지도 시민들의 불매운동도 아닌 광고주의 평가다. 그래서 수구 매체도 특유의 냉전적 논조가 우연히 자본의 운동을 거스르게 되는 특정 국면에서는 잠시나마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개혁적 매체의 리버럴리즘이나 진보주의 역시 자본의 공세 앞에서 무뎌질 수밖에 없다. 광고는 매체의 힘에 비례해 따라 붙고 매체의 힘은 그 소비자들의 (구매력) 크기에 비례하므로, 어쩌면 언론의 자본종속은 대중민주주의의 완성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때의 대중은, 독자로 불리든 시청자로 불리든 네티즌으로 불리든, 언론(이 대표하는 정파나 언론을 통제하는 자본)에 얽매인 노예이기 쉽다. 독자들은, 지난 세기에 한 독일 비평가가 우려했듯, 기자들을 장교로 삼는 언론이라는 군대의 병사에 불과하다. 여느 군대에서처럼, 언론이라는 군대 안에서도 병사는 그저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개전이나 휴전의 결정, 작전의 수립이나 변경에 그가 간여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다. 독자들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판단은 기실 언론군 사령부에서 내려온 것이다. 주체적 개인의 소멸,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위기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민주주의자가 외쳐야 할 것은 언론의 자유라기보다 언론으로부터의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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