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칠순에 등단 40년을 맞은 노 작가 송기숙씨는 문학인이면서 당대의 내로라 하는 근대사학자들의 게으름을 꾸짖는 보짱과 실력을 갖춘 드문 작가다. 그의 문학이 성취해온 바, 동학농민전쟁이며 한국전쟁 분단문제 등이 시간의 각질을 벗고 이 시대의 정서에 감동으로 스미는 것은, 그가 구사하는 문장과 행간에 밴 체득(體得)된 정감으로서의 민중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하는 문학은, 시간의 결실들에서 뉘를 걸러내는 사래질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의 신작 산문집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화남 발행)은 그 도정에 건져올린 민족적 시간의 귀한 결실들이다. 그는 28일 출판기념 간담회에서 "작가로서, 우리 민족 설화의 다양한 이야기들에 대한 내 나름의 결말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설화’라고 했지만, 그것은 옛 이야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간’의 상징일 것이다.
가령 그것은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로 전변하는 시간 속의 시골 노인들이 "내 것 없으면 죽는 세상"이라고 말할 때의 그 덧정 없는 세월에 대한 환멸과 지난 세월에 대한 간절함 같은 것이다. 책에 든 18편의 산문이 말하는 것, 즉 두레와 농악, 정자나무와 주막과 장, 잔칫날 같았던 모심는 날의 풍경과 일제의 두레정신 말살정책 등의 대비 등이 그것이다. 일제하 소작쟁의와 민중적 변혁에너지의 변형으로 나타난 신흥종교, 민중의 해방구로서의 섬과 섬의 숱한 발생설화와 진도아리랑의 분방한 가락이 품고 있는 의미 등이 그것이다. 그는 ‘붉은악마와 국가주의 시비’라는 글에서 우리 민족의 ‘건강한 정열과 도덕적 잠재력’을 긍정하면서도 ‘국가주의적 광기’ 라거나, 지나친 ‘민족주의적 열기’라는 차가운 지적의 함의와 연원에 대해서도 숙고한다. 다름 아닌 박정희 정권의 한계와 그 교육이념인 ‘국민교육헌장’의 이데올로기다.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구절은 국가주의 이념을 극명하게 표현한 구절 아닙니까.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자는 구절은 ‘인권’이나 ‘사회정의’보다 ‘능률’을 종교적 절대가치처럼 떠받들고 있지요." 그는 정부가 지금껏 이 헌장의 폐지 절차를 밟지 않고 있는 것을 개탄했다.
그는 "가까이 서서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보인다"더니 이런 말도 했다. "운동경기 중에 ‘조정’이라는 거 있잖소. 거꾸로 앉아서 죽으라 노만 젓는 그거, 보다 보면 점점 답답해요. 우리 노는 배 뒤에 서서 할랑할랑 저으면서도 파도를 설렁설렁 넘지요." 그는 그 ‘우리 노’의 정서가 통영 앞바다를 보며 예술혼을 키웠던 윤이상의 음악적 바탕을 이룬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문학 하는 방식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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