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6자회담의 한 미 일 수석대표들이 북한의 핵보유 선언 뒤 처음으로 지난 주말 회동, 대북 공동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일단 6자회담에 복귀하면 핵보유 선언에서 열거한 불만을 진지하게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세 나라 대표의 설명은 조금씩 다르지만, 집 나간 불량 청소년을 좋은 말로 달래는 듯한 모습이다. 이를 두고 우리 대표는 햇볕이 비친다고 스스로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3자 협의회의 메시지는 겉만 보면 북한의 요구와 거리가 멀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정책 폐기를 회담복귀의 전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미국이 적대정책을 바꿀 뜻이 있다면, 무엇보다 북한과 직접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북한의 유엔 차석대표 한성렬은 "미국의 직접대화 거부는 북한체제 말살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이런 북한의 요구를 어떤 식으로든 배려할 뜻을 밝혔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우리 정부 관계자는 28일 6자회담 주변에서 북미 간의 실질적 협상을 위한 직접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전망이 매클렌런 백악관 대변인이 "6자회담 틀 안에서 미국과 직접 대화할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공식 논평한 수준을 넘어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3자 협의회가 중국의 북한 설득 역할을 강조한 것을 보면 크게 기대하기는 아직 이른 듯하다.
어쨌든 이런 사태 진전은 우리사회가 북핵 줄다리기를 올바른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간단히 말해 북한의 불만이 나름대로 일리 있다고 말한 이가 얼마나 되는지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사태의 근본과 전개과정은 살피지 않은 채, 늘 미국과 정부의 공식입장을 금과옥조처럼 되뇌는 습관이 바람직한 것인지 반성하자는 뜻이다. 이는 앞으로도 지속될 북핵 줄다리기를 제대로 보는 데 도움될 것이다.
무엇보다 참고해야 할 것은 미국의 국익을 먼저 위할 미국 쪽 전문가들의 비판적 견해다. 이를테면 부시 행정부 북핵 특사를 지낸 잭 프리처드는 미국이 6자회담 틀을 택한 것은 논의의 폭을 넓힌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북한의 요구는 외면한 채 그 악덕만 심판하는 쪽으로 흐를 경우 회담 틀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일찍이 경고했다. 또 국무부 북한 담당이었던 케네스 퀴노네스는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에서 실질적 대화는 기피한 채 외교적 섀도 복싱(Shadow Boxing)만 했다고 지적했다. 다자적 협상 아닌 다자적 압력에만 이용했다는 비판이다.
이런 비판을 정부를 떠난 이들의 정치적 편견 탓으로만 볼 건 아니다. 중립적인 미 몬테레이 국제연구소 비확산연구센터(CNS)도 이번 사태에 대한 특별보고서에서 미국이 부시 2기 출범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 근거가 모호한 북한의 핵 물질 수출의혹을 들고 나온 의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분야에 권위 있는 CNS는 북한이 리비아에 수출했다는 6불화우라늄(UF6)은 핵 물질과는 다른 데다가, 북한이 소중한 핵 물질을 수출할 형편이 못되고 그에 따를 부담을 감당할 처지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문제의 UF6를 분석한 뒤 판정을 유보했다. 이 물질을 담은 용기가 파키스탄 제품인 점 등으로 미뤄 파키스탄 쪽에 혐의가 훨씬 짙다는 지적도 있다.
CNS 보고서서에서 특히 눈 여겨 볼 것은 미국이 부시의 친서까지 받은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물질 수출의혹을 공개했다는 대목이다. 중국은 북한의 강한 반발을 예견, 이를 미국에 경고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미국이 의혹을 공개한 것은 북한의 6자회담 거부 사태를 유도한 듯한 의심마저 갖게 한다. 이번 사태로 중국이 난감하게 됐다는 풀이와, 미국이 중국의 역할을 유난히 강%조하는 모습은 이런 의심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볼 만하다.
이번 사태는 어차피 별 진전이 기대되지 않던 6자회담을 놓고 한바탕 소동을 치른 뒤 결국 그 틀로 되돌아가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그만큼 미룬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의도도 이런 맥락에서 헤아릴 필요가 있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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