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통신 서비스의 근간인 KT 유선전화망이 28일 민영화 이후 최악의 전화 불통 사고를 일으켰다. 이번 사태로 대구, 부산 등 영남 대도시와 경기도 지역 가입자 200만~300만여명이 큰 불편을 겪었다.
KT기간망본부측에 따르면 이날 부산, 대구, 울산, 마산 등 영남권 대도시와 수원, 안양, 군포, 의정부 등 경기 대부분 지역에서 KT 유선전화가 불통됐다. KT 관계자는 "평소 시간당 3,000만호(呼)인 전국 통화량이 오전 10시30분께부터 4,200만호로 폭주하면서 휴대폰이나 시외로 거는 전화가 불통 됐다"며 "전화를 받는 데는 이상이 없었으며 오후 2시30분께부터 복구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내 전화까지 마비된 대구 지역에서는 불통 사태가 오후 내내 이어졌고 울산과 경기 일부 지역에서도 통화 성공률이 60%선에 머무르는 산발적인 통화 장애가 계속됐다. 이 때문에 월말을 맞아 당좌거래를 하는 자영업자들과 은행은 물론,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던 직장인들도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 큰 불편을 겪었다. 이번 사고는 2001년 12월 경기 강화 전화국의 화재로 2만3,000회선의 전화가 일시에 마비된 이후 최대 규모의 전화불통사태였다.
KT는 이날 밤 늦게 안양 지역의 일부 국번(1577과 1588국)의 연결 복구를 끝으로 전국의 유선 전화망이 완전 정상화됐다고 밝혔다.
KT는 또 이날 전국 단위의 전화불통 사태 책임을 가입자들의 과도한 전화 사용 탓으로 돌려 빈축을 샀다. KT는 사고원인을 "월말이라 결제가 폭주했고 업무통화가 집중되는 월요일인데다 3·1절 공휴일을 앞두고 업무를 미리 마감하려는 통화가 많아 트래픽이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쓰나미나 9·11 테러처럼 돌발적이 아니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KT가 사고 원인의 하나로 내세운 금융기관의 과도한 신용결제 확인전화로 인한 트래픽 급증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은 자체적인 온라인 조회 시스템을 갖고 있어 금융조회를 하더라도 유선전화 통화 트래픽을 유발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고는 KT의 유선전화 사업 경영이 악화하면서 전화사업에 대한 관심을 게을리한 데 따른 예고된 인재라는 지적이 통신업계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메일, 메신저, 이동통신 등 대체통신이 대중화하면서 수익창출에 어려움을 겪자 기본적인 서비스까지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지방의 통신 대란은 더욱 극심했다.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이날 오전 11시부터 3∼4시간 동안 이 지역 KT 일반전화 240만 가입자들이 회선불통으로 통신대란을 겪으면서 대구시내 음식점들이 점심 배달주문을 받지 못해 영업에 큰 차질을 빚었다. 또 손님들도 식사 후 카드결제를 하지 못하는 낭패를 겪었다.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는 만기 수표 및 어음에 대한 입금 및 교환요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부 기업들은 부도사태를 맞을 뻔하는 등 아찔한 상황이 발생했다. 특히 대구시내 통화완료율은 한때 20%대로 뚝 떨어져 119와 112등 긴급전화 서비스가 불통되는 ‘비상사태’까지 발생했다.
경기지역의 경우에도 수원, 안양, 군포, 안산 등지에서 핸드폰 및 시외전화 불통현상이 오후까지 지속돼 큰 불편을 겪었다. 또 월말과 휴일을 앞두고 인터넷뱅킹과 텔레뱅킹, 인터넷 주식거래를 하려던 많은 시민들이 은행, 증권사 객장을 직접 찾는 불편을 겪었다.
이범구기자 gogouma@hk.co.kr
이민주기자 mjlee@hk.co.kr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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