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하는 정부의 3·1절 공식 기념행사가 올해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이 아닌 서울 정동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거행된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 유관순기념관에 보관·전시돼 있는 유관순 열사의 영정이 다시 빛을 보게 됐다.
고 심원(心園) 조중현(趙重顯·1982년 작고·당시 이화여대 미대 교수) 화백이 1977년 정부와 유 열사 유족의 뜻에 따라 그린 이 영정은 가로100㎝ 세로178㎝ 크기의 전신 입상. 정부는 78년 3·1절을 기해 충남 천안군 병천면 유관순추모각에 이 영정을 봉안하고 정부의 공식 영정으로 지정했다.
조 화백은 당시 열사의 이화여고 재학 당시 사진을 특수 장치로 확대해 얼굴 부분을 세밀히 그려냈으며, 문중과 생가 마을을 방문해 3·1운동 당시 열사의 옷차림과 신발 등에 대해 조사하여 전문가의 고증을 거쳤다. 이 영정은 당대 화단에서 ‘인물화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유족과 추모각을 찾는 방문객들에게까지 "유 열사의 결의에 찬 표정뿐 아니라 여성스런 단아한 모습을 매우 잘 표현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 그림은 86년 유 열사의 추모각이 증축되면서 수난에 빠지게 된다. 추모각의 규모가 커지자 보다 큰 영정이 필요하게 됐고, 정부는 장우성(張遇聖·92·전 서울대 미대 교수·28일 사망) 화백이 그린 전신 좌식 영정(가로180㎝ 세로200㎝)으로 교체했다. 새 영정이 추모각에 봉안되면서 조 화백의 작품은 열사의 생가로 옮겨져 다락당에 보관되는 처지가 됐다.
이렇게 방치된 후 7년간 빛을 보지 못하던 이 영정은 조 화백 유족의 탄원으로 93년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졌으나 ‘사진이 아닌 영정은 전시하지 않는다’는 방침에 따라 지하 수장고에 보관됐다. 다시 7년이 지난 2000년 이화여고 측에서 "학교 내 유관순기념관에 전시하겠다"며 영정을 대여 형식으로 갖고가 전시하면서 14년간의 ‘창고 보관 신세’를 벗게 된 것이다. 그러다 이번에 유관순기념관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3·1절 공식 기념식장이 되면서 다시 일반인의 관심을 끌게 됐다.
유 열사의 첫 공식 영정은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다시 공개되는 가운데 현재 추모각에 보관된 장 화백의 그림이 다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이 영정 속 유 열사의 모습은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돼 모진 고문을 받아 얼굴이 퉁퉁 부어 있을 당시의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져 실제(순국 당시 18세)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데다 서양식 커튼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앉은 모습도 예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문화관광부는 장 화백에게 새로운 영정 제작을 주문하려 했으나 일부 시민단체가 그의 친일 경력을 문제 삼는 바람에 흐지부지 됐다.
천안대 유관순연구소 관계자는 "현존하는 4점의 유 열사 영정 가운데 유관순기념관에 전시된 조 화백의 영정이 유 열사의 실제 모습을 제일 잘 묘사하고 있다"며 "4점의 영정, 각종 사료와 기록, 유가족과 관계자의 증언 등을 토대로 유 열사의 영정을 새롭게 만들자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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