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가 나라꽃이 된 것은 이 꽃의 속성이 우리의 민족 정신과 닮았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외세의 침입에도 굴하지 않고 예지(叡智)와 용기를 모아 꿋꿋하게 단일 민족으로 나라와 겨레를 지켜온 민족 정신이 우선 무궁화 정신과 통한다. 대구교대 김규선 교수는 ‘무궁화 교본’에서 무궁화가 다년생의 목본인 것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택하지 않고 장대하고 오랜 누림을 값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민족 정신과 상통한다고 했다. 그는 또 우리 민족은 밝고 맑음, 그리고 그것의 근원인 하늘과 태양을 숭앙하는 겨레였다며 무궁화의 종류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너른 흰꽃 바탕에 짙붉은 화심(花心)을 가진 꽃을 특히 사랑해온 것은 이 꽃이 백의를 숭상하는 우리 민족의 기호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김 교수는 무궁화가 보통 7월부터 찬바람이 부는 10월 하순까지 계속 필만큼 화기(花期)가 긴 것도 누대로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정신력을 자랑해온 우리민족의 염원에 안성맞춤이라고 평가한다. 토질을 떠나 어디다 옮겨 심어도 잘 자라는 특성도 이른바 ‘은근’과 ‘끈기’라는 우리 민족성에 맥이 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이름난 역사가, 문필가들이 무궁화와 우리 민족이 가까운 이유를 밝힌 글도 적지 않다. 조지훈은 "무궁화… 희디 흰 바탕은 이 나라 사람의 깨끗한 마음씨요, 안으로 들어갈수록 연연히 붉게 물들어, 마침내 그 한복판에서 자줏빛으로 활짝 불타는 이 꽃은 이 나라 사람이 그리워하는 삶"이라고 표현했다. 수필가 이양하는 "무궁화는 흰 무궁화라야 한다. 우리의 선인(先人)이 취한 것도 흰 무궁화임에 틀림이 없다. …흰빛은 우리가 항상 몸에 감는 빛이요, 화심의 빨강은 또 우리의 선인들이 즐겨 쓰던 단청(丹靑)의 빨강이다"고 했다.
최남선도 조선의 이름 지리 물산 풍속 등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조선상식문답’(1946년)에서 무궁화가 나라꽃이 된 연유를 설명했다. "미상불 조선에는 어디를 가든지 무궁화가 흔히 있으니까 무궁화 나라라고 함이 까닭 없달 수 없으며, 또 무궁화는 꽃으로 가장 좋은 것이 아닐지는 모르지마는, 그 발그레한 고운 빛이 미인의 얼굴을 형용하는 데 쓰이는 터이며, 또 날마다 새 꽃이 피어가면서 봄 여름 가을을 지내는 긴 동안에 줄기차고 씩씩하게 피기를 말지 아니하는 점이 왕성한 생력을 나타내는 듯하여서, 나라를 대표하는 꽃을 삼기에 부족할 것이 없다 할 만합니다."
김범수기자
무 궁 화
김광림
꽃! 하면
금방 애정이 싹터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데
그 중 장미꽃이 제일
하지만
우리에겐 그보다 더한
애국심을 북돋아 주는
꽃이 있어
한동안
벚꽃에 짓눌려서
꺾이고 뽑혀서
천대 막심했건만
한 해에
백일 동안이나 버티며
새 꽃으로 거듭나는
무궁화
삼천리 강산에서
한결같이 섬기는
백의민족의
넋과 긍지의 표상이라
오늘날의
분단의 아픔과
지리멸렬한 인심을
기어이
홑꽃과 겹꽃으로 이룩할
오! 무궁화
무궁화여!
● 김광림 시인은…
모더니즘 시에 바탕을 둔 이미지스트로 유명한 김광림(76·사진) 시인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낸 문단의 원로. ‘상심하는 접목’, ‘이 한마디’등 15권의 시집을 통해 800여편의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왔다. 1985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한국시인협회상, 보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현재 아시아시인회의 한국대표와 한국고유문화컨텐츠진흥회 회장으로 활동중이다.
● 추인엽 화백은…
서양화가 추인엽(43·사진)씨는 동양적 자연관을 토대로 인간과 자연의 소통에 관심을 기울여온 작가이다. 지금까지 모두 6차례 개인전을 통해 유화부터 목탄, 설치미술, 디지털작품까지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보여주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예원학교 미술과 강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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