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종묘 앞 광장. 웅성임을 헤치고 낭랑한 시가 터져 나온다.
‘백발을 가지런히 키워온/ 세월 속에/ 때묻은 내 육신이 아직도/ 끓고 있다./ 비 뿌린 모래땅 위에/ 다시 나를 심고 싶다.…’(김용선 시인의 ‘인생’)
아직 찬 바람에도, 광장의 후미진 양지 마다에 삼삼오오 모여 앉았던 노인들과 노숙자들이 속속 모여든다. 금세 우람해진 청중의 어깨너머로 길 가던 시민들도 고개를 기웃거린다. 서울성북문인협회(이사장 조경희·전 정무2장관) 문인·예술인들이 노인들을 위해 벌인 ‘할미꽃 제비꽃 그리고 인동초들의 문학장터’ 행사다.
행사는 문학과 음악의 걸진 잔치였다. 효(孝)와 인생의 시에 분위기가 다소 숙지는가 싶으면 성장(盛裝)한 아마추어 가수들이 나서 노래와 민요로 흥을 돋우고, 묵직한 수필이 낭독된 끝에는 경기 민요 ‘태평가’ 한 자락이 터져 나왔다. 한시와 민요, 동시와 노래, 시와 가곡·기악이 화답하듯 이어진 이날 ‘문학장터’는 2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광장을 메운 800여 명의 청중들은 시종 넉넉한 박수와 환호로 몸과 마음을, 행사를 데웠다. 행사에는 조경희 이사장과 시인 허영자(성신여대 명예교수) 조병무(전 동덕여대 교수) 민용태(고려대 교수) 씨, 가수 기악인 등 협회 회원 32명이 참여했다.
성북문인협회는 지역 문인들의 친목과 문향(文香)의 확산을 위해 2003년 6월 설립돼 회원 73명이 꾸려 온 단체다. 협회의 순회 문학행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해 4월에는 경북 영덕군 축산항구에서 지역 문인들과 함께 작품 낭송회와 문학특강 행사를 벌였고, 4~9월 6개월 동안 북한산 탐방안내소(정릉) 앞 광장을 찾아가 등산객 지역주민과 함께 시·시조 낭송과 성악 기악 공연을 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해 10월 강원 원주교도소를 시작으로 충남 홍성교도소(서산구치소), 경북 청송교도소, 경기 의왕시의 서울소년원, 경기 안산소년원 등으로 이어진 교정기관 순회 문학행사도 빼놓을 수 없다.
협회 사무총장인 백민조 시인은 "회원들의 신작시 발표도 있고, 기악·노래 공연도 흥겹지만, 교도인과 재소자들이 함께 무대에 나서서 펼치는 자작시와 애송시 낭송 코너가 특히 인상적이었다"며 "올해에도 벌써 교정시설 8곳에서 방문을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협회는 지난 해 이들 교정시설에 회원들의 작품집과 앰프 스피커 등을 기증했다.
현대문학의 거장 보르헤스는 만년의 한 강연에서 "시는 표현"이라고 했다. 시가 도서관의 책장 속이 아니라 읊조리는 입술과 듣는 귀에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하면, 서울성북문인협회는 스스로 시가 되어 시를 나눠온 것이겠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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