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결정전에서 반드시 우승할 겁니다. 그래야 나를 내버린 신한은행에 대한 분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아요."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의 2005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뒤 24일 홈인 춘천으로 떠나는 버스에 오르기 전 김영옥(31)의 입술은 바르르 떨렸다. 뭐가 그리 서운할까. 이해에 따라 팀을 옮기고 선수를 내보내는 게 프로의 생리인데 말이다.
지난해 김영옥은 많은 일을 겪었다. 소속팀 현대건설이 자금난에 시달렸고 그는 자유계얕약선수(FA)로 풀렸다. 많은 구단에서 거액을 제시했지만 김영옥은 요지부동. "나 혼자 살자고 팀 버리고 떠날 순 없었어요. 프로는 돈이 지배한다지만 정(情)만큼 중요한 것도 없어요." 김영옥은 국가대표팀 월급을 털어 간식비도 안 나오는 후배들을 챙길 정도로 팀 사랑이 각별했다.
그러던 중 신한은행이 그 해 6월 현대건설을 인수했다. "젊은 선수가 필요하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어요. 신한은행에서 농구인생을 마치리라 다짐했는데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사전협의도 없이 젊은 선수 3명과 맞바꿔 저를 우리은행에 보냈어요." 춘천 고향 팀(우리은행)에 왔지만 김영옥은 심한 배신감에 운동을 그만 둘까도 생각했단다.
"저를 보고 노장이라고 하지만 체력만큼은 자신했거든요. 버려진 헌신짝의 기분이랄까…." 김영옥은 올 시즌 신한은행만 만나면 이를 더 악물었다. 신한은행과의 상대전적 4전 전승. ‘농구 선수로선 할머니’라는 비아냥은 24일 현재 18게임에 출장해 경기 당 평균 39.2분(1위)을 뛰면서 보란 듯이 떨쳤다. "코트에서 신한은행 선수들의 견제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들어와요. 심판 몰래 머리까지 때리기도 해요. 속상하죠. 함께 울고 웃며 한솥밥을 먹던 후배들인데…."
마음 고생 덕인지 김영옥은 생전 처음 포인트가드를 맡아 팀의 든든한 살림꾼으로 정규리그 우승의 주역이 됐다. 경기 당 평균 어시스트 5.1개(2위) 평균 득점 13.1점(10위)을 기록하고 있는 그는 24일 기자단이 뽑은 여자프로농구 ‘3라운드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결혼 3년차. 남편(정경모·35)은 서울 강남에서 전주원 신한은행 코치의 남편과 회전초밥 집을 경영하고 있다. "현재로선 힘 닿는 데까지 운동에만 전념하고 아이는 나중에 가지려고요. 저 너무 매정한가요."
김일환기자 kevin@h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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