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미국의 마피아들은 도박 골프를 즐겼다. 마피아 두목들은 거액 또는 담당구역을 걸고 골프대결을 벌였는데, 상대방의 속임수를 막기 위해 골프장에는 기관총을 든 부하들이 깔리는 살벌한 풍경을 연출했다고 한다. 시카고 근교의 골프장에서는 총포와 화약을 생산하는 거부와 월 스트리트의 은행가가 전 재산을 걸고 골프대결을 펼쳤다는 기록도 있다. 거부는 네 개의 공장을, 은행가는 소유주식 전부를 걸었는데 승패는 마지막 홀 퍼팅으로 판가름 나 은행가가 승리했다. 대결에서 진 거부는 알거지가 되어 운전사로 취업, 새 출발을 해야 했다.
■ 억대 내기골프가 도박이 아니라는 판결로 빚어진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타당 50만~100만원씩을 걸고 30여차례 내기골프를 한 4명에게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자 ‘상식 이하의 판결’이라는 비난과 ‘의미 있는 판결’이라는 평가가 함께 나오고 있다. "화투 카드 카지노처럼 승패의 결정적 부분이 우연에 좌우되어야 도박이 되는데, 운동경기는 경기자의 기능과 기량이 승패의 전반을 결정하기 때문에 골프는 도박이 아니다"라는 것이 무죄 선고 이유다.
■ 눈길을 끄는 것은 도박 성립기준이 된 ‘우연성’이다. 우연이 승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도박으로 보는 것이 대세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스포츠나 게임은 기량과 우연의 합작품이다. 속임수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해도 화투나 카드는 우연만으로 승패가 갈리지 않는다. 슬롯머신이나 로또 정도가 우연성이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판결의 논란은 도박 여부에서 발화한 것 같지만 더 근본적인 불씨는 내기와 도박을 혼동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인식에 있는 것이 아닐까.
■ 도박(gamble)은 남의 재물을 취하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고, 내기(bet)는 게임의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경품이나 돈을 거는 것이다. 내기가 게임에 긴장감을 주고 참가자에게 목표의식을 갖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면, 도박은 재물취득이 목표이고 게임은 수단일 뿐이다. 영어의 ‘bet’가 옛날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한잔이나 동전 몇 잎을 걸고 골프게임을 한데서 비롯됐다는 역사적 유래도 있다. 내기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도박의 경계선을 넘는 것은 ‘신사의 게임’이라는 골프를 모독하는 것이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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