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언론인에 대한 신뢰는 수십 년간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여론조사 기관인 해리스가 2000년에 내 놓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61%의 응답자가 의사를 가장 신망하는 직업인으로 꼽았다. 이어 과학자 교사가 명예와 신뢰를 인정받는 직종이었다. 반면 언론인을 높이 평가한 비율은 고작 16%에 불과했는데, 이는 조사 대상 17개 전문직종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수준은 1970년대 이래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흔히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중고차 딜러를 가장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 다음이 신차 딜러, 그 다음 쯤이 언론인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유수 언론의 종사자들은 예외이겠지만, 수 많은 군소 마을신문이나 타블로이드 매체의 폐해가 주는 인상에서 이런 평가가 나왔을 것이다. 언론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정적 평가는 1990년대 중반 빌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에서 절정에 이르렀던 것으로 지적된다. 1999년 조사기관 Pew는 그때 미국인들의 3분의 1 정도가 언론을 부도덕하고 무책임하다고 봤으며, 나아가 민주주의에 해로운 존재로까지 여겼다는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 정도와 내용, 배경은 다르더라도 언론불신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종류의 문제가 바로 정치 영역으로도 직결돼 있는 특수성을 가진다. 노무현 정권의 탄생이나, 이후 계속된 정권과 언론의 충돌은 한국적 사회변동의 요인과 떼서 생각할 수 없다. 이를 가능케 한 핵심적 요인이 컴퓨터 기술이 가져다 준 인터넷 미디어의 등장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터넷 매체의 힘은 권위 파괴, 독립적 개성, 속도와 군집의 위력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비전문성, 무책임, 해석과 분석의 맹점 등으로 인해 전통 매체의 의미 창출 기능이 다시 각광받는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
■ 인터넷 매체 중에서도 블로그는 최신종 미디어다. 뉴스와 의견, 토론과 대화가 뒤섞인 무정형 매체라 할 만한데, 바로 그것이 가장 강력한 무기다. 얼마 전 스위스 다보스 포럼 석상의 실언으로 CNN의 뉴스 본부장이 사퇴한 사례는 블로그의 위력을 세계적으로 실증한 사건이었다. 한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기술만개의 시대이다. 그러나 정작 다보스 포럼의 그 블로거는 ‘하이테크로 무장한 성난 군중’의 역작용을 무겁게 경계했다고 한다. 혼돈의 시대를 제대로 따라잡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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