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하락은 그 자체보다 속도의 문제다. 원고(高)는 수출부진을 초래해 실물경기 회복을 지연시킬 수 있는 반면, (수입)물가안정을 통해 구매력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그 심각성은 너무 빠르고 너무 가파르다는데 있다. 2·4분기이후로 예상했던 1,000원 붕괴가 순식간에 현실화함에 따라 심리적 쇼크도 크다. 모처럼 찾아온 경기반등이 탄력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환율하락의 부정적 결과는 대체로 두 가지다.
첫째는 중소 수출기업이다. 대기업들은 경쟁력도 있고 환리스크 관리능력도 있지만, 전체 수출기업의 75%를 차지하는 100만달러(수출액) 이하 영세수출업체들은 사정이 다르다. 최대 경쟁자인 중국 기업들은 위안화의 고정환율 혜택을 듬뿍 받는 반면, 국내 중소기업들은 무방비상태로 원화가치 폭등에 직면하고 있어 가격경쟁력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됐다. 더구나 많은 대기업들이 환율부담을 납품가격으로 하청 중소기업에 떠넘길 것으로 보여 중소기업들은 이중부담을 짊어져야 할 형편이다. 현오석 무역연구소장은 "결국 환율하락이 장기화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심화, 나아가 중소기업 부문의 고용악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둘째는 금융시장 불안이다. 최근 폭등세가 겨우 진정됐던 장기금리는 환율폭락으로 정부의 시장개입과 이를 위한 외환시장 안정용 국채(환시채) 발행확대 우려가 커지면서, 다시 오름세를 타고 있다. 경기회복의 전제조건인 저금리 기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흐름이다. 한 시장관계자는 "1월처럼 또다시 환율-금리정책이 정면 충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식시장 ‘조정국면’도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소비증가가 증시활황을 통한 ‘자산효과(wealth effect)’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환율폭락은 민간소비개선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전망이다.
물론 고유가로 인한 국내 인플레압력을 상쇄시켜준다는 점에서 환율하락이 반가운 측면도 있다. 국제유가(서부텍사스중질유)는 22일 뉴욕시장에서 4개월만에 다시 50달러를 돌파했고, 기타 국제원자재도 상승압력이 거세지는 상황. 환율하락은 이런 고유가에 따른 수입물가 부담을 다소나마 덜어줌으로써, 모처럼 살아난 민간구매력이 유지되는데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의 금년도 예상환율은 연평균 1,020~1,030원대. 이주열 한은 조사국장은 "아직은 거시경제전망 수정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환율이 계속 급락한다면 재검토를 해봐야겠지만 지금의 폭락세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 재계, 달러결제·외화예금 축소 등 비상
환율 급락에 수출 기업들이 초비상 사태에 돌입했다. 수출 기업들은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이하로 떨어질 경우 ‘출혈 수출’로 수출 채산성이 크게 악화할 것으로 보고 세 자릿수 환율에 대비한 시나리오 작성, 유로화 결제비중 확대, 환 헤징(hedging· 가격변동 및 환 위험을 피하기 위해 행하는 거래, 수출업무에서는 수출대금 결제에 있어 환율변동 위험을 없애기 위해 환율을 미리 고정시키는 거래를 말한다), 생산거점 다변화 등 ?%允?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올 경영계획에서 적정 환율을 달러당 1,050원으로 책정해놓은 삼성전자는 단기적인 환율 하락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금 지급을 가급적 달러로 하는 한편 현재 60% 가량인 달러 결제 비율을 최대한 줄이고 유로화와 엔화 결제를 늘리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환율이 달러당 100원 절상될 때 최악의 경우 2조원 안팎의 경상수익 감소가 우려되지만 환헤징을 하지 않고 대신 원가 절감노력 및 달러화 자산 최소화 등을 통해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올 평균 환율을 970~980선으로 잡고 경영계획을 짠 LG전자도 사내외 전문가로 ‘금융관리위원회’를 구성, 대응 전략 수립에 나섰다. 헤징 비율과 유로화 결제 비율을 늘리고 외화예금을 줄이며 외화 수입 및 지출 시기를 조절하기로 했다. 또 원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인도 브라질 멕시코 등 글로벌 생산거점 다원화에 주력하기로 했다. 수출 비중이 60%가 넘는 현대·기아차는 수출 채산성이 더 악화할 것으로E 보고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유로화 결제 비중을 확대하고 환율쇼크 완화를 위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 비 달러지역 수출 확대 및 물량 우선배정과 유럽시장 수출확대를 추진하기로 했다.
원자재가 폭등에다 달러 결제가 많은 업종 특성상 환율 급락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조선업계는 올해를 ‘비상경영의 해’로 선포하고 선물환 기법을 동원한 헤지에 나서는 한편 경비절감에 주력하고 있다. 환율 하락에 대비해 선박 건조기간중 환율 변동으로 인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원가 연동형’ 계약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자체 환리스크 관리가 힘든 중소 수출업체는 환율 하락으로 존폐의 기로에 서는 등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편 무역협회 조사결과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이하로 떨어질 경우 수출 기업 10곳 가운데 7곳은 수출 물량 감소 등의 차질이 불가피하며 손익분기점 환율은 평균 1,066원으로 조사돼 이 이하로 떨어질 경우 손해를 보는 출혈 수출이 우려되고 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 국제투자銀들 전망치 수정/ "3월內 900원대 진입 연말엔 900원 갈수도"
원고(高)는 대세다. 대부분 국제투자 은행들은 이르면 3월말 이전에, 늦어도 6월말까지는 원·달러환율이 900원대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한다. 도이체방크는 6월말 원·달러환율을 990원으로, 모건스탠리와 JP모건은 980원으로 내다봤다. 환율은 하반기에도 계속 떨어져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은 연말 환율이 950원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으며, 리만브라더스는 900원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들 투자은행들은 환율전망을 수정하면서 원·달러환율 하락폭을 계속 확대조정하고 있다.
이런 전망배경엔 원화 자체의 강세요인과 달러화의 약세요인이 맞물려 있다. 원화강세는 곧 달러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는 뜻. 수출호조로 경상수지가 금년에도 100억 달러 이상의 흑자가 예상되는데다,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투자자금도 지속적으로 유입될 것으로 보여 ‘달러공급 우위기조’는 확고해 보인다. 당국의 시장개입은 있겠지만, 원화강세 대세를 역류시킬 수는 없다.
달러화도 큰 흐름은 약세다. 작년말 이후 달러화가 상대적 강세반전을 시도하고 있지만, ‘약(弱)달러’ 펀더멘틀 자체를 흔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원인은 미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 즉 쌍둥이(경상+재정)적자에 있다. 부시행정부가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사회보장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단기간내 효과를 내기는 힘들 전망이다. 오히려 군비지출 등 재정악화요인이 더 많아 보인다.
쌍둥이적자 해소를 위해선 궁극적으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여섯 차례 연속 기준금리인상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지만 긴축효과는커녕 오히려 장기금리가 내려가는 기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그린스펀 FRB의장 조차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표시했을 정도다.
이런 맥락에서 투자은행들은 ‘1달러=1,000원’처럼 ‘1달러=100엔’ 붕괴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도이체방크 JP모건은 3월말 이전에 엔화환율이 두자릿수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말 엔·달러환율에 대해서도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은 95엔, 도이치방크는 93엔, 리만브라더스는 90엔까지 전망했다.
한가지 변수는 위안화 평가절상. 내년이후로 미뤄질 것이란 예상도 있지만, 상반기중 변동폭 확대든 복수통화바스켓제도 도입이든 실질적 위안화 절상조치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 외환딜러는 "위안화 절상이 이뤄지면 원화도 동반절상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원·달러환율은 예상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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