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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피와 뼈' - 광기어린 욕망은 피보다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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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피와 뼈' - 광기어린 욕망은 피보다 진했다

입력
2005.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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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레 당실 둥그레 당실…" 1923년 제주도 민요 ‘오돌또기’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배 한 척이 파도를 가르고 있다. "저기 대판(오사카)이야! 대판." 한 사람이 소리치자 갑판은 술렁이고, 청년 김준평은 오사카 항구의 공장 굴뚝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영화 ‘피와 뼈’의 시작은 벅찬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이후는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소름 끼치는 한 남자의 악행과 그 가족의 절망이 화면을 채운다.

가난한 조국의 고향 제주도를 떠나 일본에 정착한 조선인 김준평(기타노 다케시)은 한 없이 ‘나쁜 남자’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먹고, 성욕을 채우고 싶으면 딸 앞에서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어묵공장을 차린 곳도 남의 집. 따끈한 어묵을 만들어 재력을 키우면서도 그는 온기어린 미소 한 번 짓지 않는다. 고리(高利)에 시달린 채무자가 목숨을 버려도 "내 돈은 피와 같다. 내 돈 먹는 놈들은 내 피를 빨아 먹는 놈들"이라며 눈 한 번 까딱하지 않는다. 우락부락한 얼굴에 구더기가 꼬인 고기를 먹으며 곤봉을 휘두르는 이 괴물 같은 남자는 오사카 다이세이 거리 조선인 거주지에 자기만의 ‘제국’을 세운다.

손톱만큼의 동정도 주고 싶지 않은 ‘문제적 인간’ 김준평은 전통적 가부 장과 냉혹한 자본가가 오버랩된 인물이다. 절대 군주로서 아내와 자식들 위에 군림하고, 노동자를 착취해 오로지 자기 배만 채우려 한다. 성년이 되어 찾아온 사생아 다케시와 일대 활극을 벌이며 아내 영희(스즈키 교카)의 저주를 받고, 아들 마사오와 주먹다짐을 하면서도 그의 욕망은 요지부동이다.

그가 유일하게 온정을 베푸는 사람은 일본인 첩 기요코. 뇌수술을 받고 전신마비가 된 그녀를 힘들게 목욕시키고 보살피는 모습은 그답지 않다. 자기를 빼닮은 ‘강한’ 아들을 일본인 뱃속에 잉태시키고 싶었던 걸까. 살아야 한다는 본능에 충실했던 그는 피지배 민족 영희에게서 난 아들 마사오가 나약하기에 그의 ‘제국’을 이어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제목 ‘피와 뼈’는 "피는 어머니로부터 받고, 뼈는 아버지로부터 받는다"는 제주도 굿에서 유래했다. 재일동포 작가 양석일의 자전적인 원작에서 김준평은 "피보다 뼈가 강하다. 피는 뼈에서 만든다. 사람은 죽어도 뼈는 남는다"라고 말한다. 그가 자신의 뼈로 만든 자식과 피인 아내를 마음대로 다룰 수 밖에 없었음이 제목에서 드러난다.

최양일 감독은 광기어린 한 인간의 패악을 감정개입 없이 묵묵히 바라보며 날것으로 느껴보라고 권한다. 그 느낌은 한없이 불편하지만 쉽게 외면할 수도 없다. 가슴을 비집고 들어와 생채기를 내고 결국 화인(火印)을 찍는다. 최 감독의 표현대로 1주일간 가슴아파하고 신음할 만하다.

‘피와 뼈’의 압권은 무엇보다도 기타노 다케시의 ‘괴물’ 같은 연기다. "만일 기타노가 출연을 거부했다면 영화제작을 포기했을 것"이라는 최 감독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재일동포 사회를 정밀 묘사한 것도 볼거리다. 18일 열린 일본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25일 개봉. 18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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