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내기골프를 도박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이정렬 판사가 여론과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법조계 반응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다만 법률가들도 여론을 의식하고 언론도 의견을 선별하는 것을 감안하면, 신선한 판결이란 일부 평가에 골프 핸디캡처럼 가중치를 부여해야 할 듯도 하다. 어쨌든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90%가 판결을 비판하고 온갖 인신공격이 난무하니 이미 게임은 끝난 것처럼 보인다. 갤러리의 어느 언론인은 ‘OB 판결’이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아니,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이 마냥 옳을까.
■ 조금 에둘러 가자. 부장판사 출신인 이재훈 변호사는 ‘바지 벗은 판사’라는 자전적 에세이에서, 판사시절 도박죄 피고인을 법정에서 만나면 미안한 생각이 들어 관대하게 판결했다고 썼다. ‘고스톱이든 포커 도박이든, 판사들도 다 하는데…’라는 마음이었고, 이런 속내를 내비치면 피고인들도 뜻밖에 구세주를 만난 듯 안도하더라고 회고했다. 도박죄의 법리와 법관의 고민을 심각하게 논하지 않았으나,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법복의 위엄을 벗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적한 셈이다. 그러나 담긴 뜻은 가볍지 않다.
■ 이번 판결의 뜻도 이런 맥락에서 헤아릴 필요가 있다. 내기골프가 도박인가 아닌가를 넘어, 공익을 명분으로 도박 또는 비슷한 행위를 규제하더라도 기준이 분명해야 하고 현실과도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판사는 국가가 허용하는 카지노와 로또 또는 민간 골프대회 스킨스 게임 등은 괜찮고, 개인의 내기골프는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중적 잣대라고 지적했다. 이걸 두고 여론은 부유층의 일탈행위를 용인하는 망발이라고 성토한다. 그러나 빈부에 관계없이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 등을 국가가 어디까지 제한하는 것이 옳은가는 끊임없이 검증하고 토론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 이렇게 보면 그는 우리 사회가 더러 의문을 가지면서도 심각하게 논란하지 않은 문제를 공론의 장에 끌어냈다. 그저 튀는 판사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보호라는 법관의 가장 중요한 본분을 다하기 위해 남달리 정성을 기울인 것으로 볼 만한 것이다. 이를 두고 대뜸 골프와 상식과 법리에 모두 무지한 판결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여론과 언론의 비판 논리가 판결취지나 법원칙 등과 동떨어진 점이 많다. 자신들을 위해 정성을 쏟은 판사에게 욕설을 퍼붓는 아이러니마저 느낀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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