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책사업’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그것이 선거와 관련된 것이거나 주민들의 지지와 관련된 것이라면 특히 그러하다. 대표적인 것이 새만금 간척사업이다. 그것이 쌀이 부족하던 일제시대라면 일리가 있다. 그러나 있는 땅도 휴경하고, 환경이 중시되고, 삶의 질에 관심을 갖는 오늘날에는 의미 없는 일이다. 독일 바텐메어 개펄국립공원처럼 우리도 이곳을 생태낙원과 생태실습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행정도시도 적어도 십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평지풍파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토지의 균형발전이라는 슬로건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런데 충남 연기에 행정기관을 이전하는 것이 강원도와 경상도의 ‘균형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정말 도움이 된다면 강원도민과 경상도민도 행정수도건설을 촉구하는 시위에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영원히 버릴 것인가. 통일 후에는 또 다시 행정수도를 건설한다고 법석을 떨 것인가. 균형발전은 차라리 지방에 산업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첩경이 아닐까?
농촌 살리기를 국책사업으로 하는 것은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특효약이다. 농촌은 전국 구석구석에 두루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농촌 살리기는 비록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불가능 한 일은 아니며, 어렵다고 해서 포기할 일도 아니다. 행정수도나 고속전철에 드는 수십 조의 비용을 농촌 살리기에 체계적으로 투입하면 그만한 성과가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농촌 살리기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성공적으로 영농을 하는 농가와 농촌이 국내와 국외에 있기 때문이다. 성공사례를 잘 연구해서 각 지역에 맞도록 보급하고 뒷받침해주는 것이 국가의 몫이다. 이를테면 그 지역의 기후풍토에 맞는 작물을 선정하고, 유기농업 등으로 고품질·고가격 상품을 생산하며, 국가의 품질인증제도를 활성화하고, 판로를 확보하되, 보장된 품질의 상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체계를 갖추도록 국가나 농협에서 유도하는 것이다. 또한 한살림 공동체에서 하고 있듯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 유통마진을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며, 포도를 가공하여 포도주를 만들듯이 농산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제는 농산물도 공산품처럼 품질관리가 이루어져야 하고, 각각의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양으로 승부하는 농업은 이제 살아남을 수 없다. 뉴질랜드의 키위와 일본의 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뉴질랜드의 키위재배농민도 1980년대 초에는 과다경쟁과 생산보조금 감소, 가격폭락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들은 힘을 합해 단일 브랜드의 회사를 설립하고 품질관리를 철저히 하고 수출창구를 단일화해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키위 생산·수출 회사가 됐다. 그 회사에서 최근 제주도에 키위농장을 만들고 있다.
쌀 수입개방에 직면한 일본의 농부는 고급 쌀 개발에 성공했고 일본 국민의 70%가 "외국 쌀이 아무리 싸도 일본 쌀을 먹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뉴질랜드의 농부와 일본의 농부가 한 일을 우리 농부가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이미 다수확 쌀을 육종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오랜 미작문화의 전통을 가진 우리가 아주 질이 좋은 쌀을 생산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농촌 살리기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과제이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겨우 25%이며 쌀 이외 곡식의 대외의존도는 97.4%에 이른다. 석유파동이 가끔 있어왔듯이 식량파동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것이며 이는 국가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농촌을 살리는 것은 국토 균형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며, 식량주권을 지키는 길이고, 논과 같은 습지를 보존하여 생태계를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농업은 우리의 생명산업이다.
이동인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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