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2시간씩 지하 갱도에 갇혀 일했어. 짐승만도 못한 생활이었지. 지금도 TV에서 광부들 모습만 봐도 소름이 끼치는구먼." 21일 일제강점기에 노무자로 강제 동원됐다고 신고한 생존자들에 대한 확인조사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전북 익산시 황등면 율촌리 조용섭(80)씨의 집. 조사 대상자인 조씨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 출장 조사반에게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일본용어까지 정확히 구사하면서 생생히 전했고 조사반은 이를 캠코더에 담았다.
전남 여천군 남면 두하리에서 살다가 18세 때 일본 규슈(九州)탄광으로 끌려갔다는 조씨는 폭파작업 도중 다친 왼쪽 발목을 내보이며 몸서리를 쳤다. 당시 사고로 지금도 다리를 저는 조씨는 "1943년 11월께 마을 구장이 흉년에 굶어 죽지 않으려면 징용을 가라는 말에 부산에서 여객선을 타고 일본으로 끌려간 후 하루 12시간씩 지하갱도에서 강제 노동을 하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었다"고 진술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해방 3개월 전에 고향 사람과 함께 탈출해 귀국했다"는 그는 "형도 1944년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해방 후에 돌아와 95년에 숨을 거두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조사반은 죽촌리 화농마을 경로당에서도 이 마을에 사는 한형석(84)씨와 임득규(83)씨로부터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당시 상황을 기록물로 남겨 놓기 위해 증언을 채록했다. 한씨는 "배가 고파 산에 가서 풀을 뜯어먹고 살면서 2년간 시멘트 공장에서 일했는데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돌아왔다"며 치를 떨었다.
이날 진상조사에서 조사반은 4개 주제별로 모두 100여 문항의 예비설문지를 만들어 피해 당사자들로부터 직접 증언을 청취했으나 일부 증언자들이 난청과 치매, 우울증세를 보여 조사원들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익산지역에서는 1일부터 19일까지 익산시청에 203명, 진상규명위원회에 13명이 피해신고를 했으며 이날 현장조사에 들어간 대상자들은 직접 신고한 사람들이다.
조사반은 22일에는 함열읍과 웅포 삼기 금마면에서, 23일에는 여산 낭산면에서 모두 13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뒤 앞으로 이 같은 작업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위원회는 피해신고 서류나 첨부자료 중에서 사료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관련자료는 국가기록 영구보존문서로 분류해 피해신고와 진상규명 절차가 끝나더라도 영구히 보존할 방침이다.
한혜인 조사 2팀장은 "강제 동원됐던 생존자들의 대부분이 80대 이상의 고령이라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기 때문에 신속하게 방문조사에 착수하게 됐다"며 "이번 조사는 제출한 피해신고 서류가 미미해 진상규명을 하는데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보강하기 위해 증거를 얻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익산=최수학기자 sh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