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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독일 작가의‘통일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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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독일 작가의‘통일감정’

입력
2005.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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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발저는 독일의 대표적 작가다. 헤르만 헤세상과 쉴러문학상 등을 수상한 그는 ‘독일에 관해 말한다’라는 연설로도 유명하다. 통일 2년 전인 1988년 ‘독일은 왜 통일돼야 하는가’를 역설한 예언적이고 선구적인 웅변이다. 그는 이 연설에서 ‘역사의식’이라는 용어 대신, 지식인이 쓰고 싶어하지 않는 ‘역사감정’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의도된 효과를 거두었다. 반론을 편 이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였다. 그라스는 ‘감정은 많고 의식은 적다’고 반박했으나, 발저의 연설을 더 널리 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발저의 연설은 구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에게서 자극을 받는 것이다. '…두 개의 독일은 파국의 산물이다. 증명될 수는 없어도 불가피하게 있을 수밖에 없는 감정, 그것은 역사감정이다. 우리는 그것이 존재한다고 확인하는 일 외에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좌우익 지도자들은 분단을 합리화하는 일에 공조하고 있다. 일반인의 의견은 묻지도 않는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나 자신도 놀라운 일이다. 나의 역사감정에서 연유할 것이다.

급격히 진전된 그 후의 통일과정에서 양 독일의 지식인은 뜨겁고 복잡한 논쟁을 벌였다. ‘우리는 왜 한 민족이 아닌가’라는 통일론자의 주장이 있었고, ‘우리는 왜 한 민족인가’라는 반론이 나왔다. 여성 작가 크리스타 볼프는 광장에서 "시민이여, TV를 끄고 우리와 함께 달리자. 우리의 언어는 이제 관료주의적 독일어, 신문 사설의 독일어에서 벗어났다. ‘우리는 주권을 가진 국민이다’라는 외침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독일통일이 우리 역사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돌아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김일성 북한 주석의 돌연한 사망으로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되었으나,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은 성사되었다. 당시 언론은 흥분 과잉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냄비 언론’답게 조용하다. 남북관계에서도 ‘북한 퍼주기’ 논란 끝에 이뤄진 개성공단을 제외하고는 별 진전이 없다. 다행히 그 개성공단에서 ‘냄비’가 만들어져 남한에 첫 출시 되었다.

분단 60년, 남북정상회담 5주년 되는 올해는 2차 정상회담이 열릴 만한 해다. 연초부터 회담 가능성이 활발하게 거론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제 어디서든 남북정상회담을 가질 용의가 있다"면서도, 6자회담 진행 중에는 회담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회담에 대한 언론과 지식인, 작가의 반응도 뜨겁지 않다. 개성공단이나 남북이산가족상봉 같은 작은 성과에 만족하는 것일까. 회담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 높아 보인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레스터 서로의 글에서 통일에 대한 희망적 전망을 읽는다. 그는 홍콩의 예를 들며, 통일이 남한에 7,500억 달러 정도로 추정돼 온 통일비용보다 더 큰 경제적 원동력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1977년 중국의 경제특구가 열리자 홍콩 제조업자들은 제조원가를 크게 절감했고, 홍콩에서 금융·마케팅 같은 산업이 꽃피었다. 북한의 저임금은 20∼30년간 남한의 거대기업과 산업구조에 높은 이익을 낼 기회를 제공하며 새로운 산업환경을 창출할 여유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6자회담과 한미공조도 중요하지만, 민족과 남북관계의 핵심적인 과제를 거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현명한가. 최근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하고 6자회담을 거부하자 우리 정부가 당황하고 있다. 지금은 정상회담과 평화를 얘기할 때 같은데, 핵 불안이 한반도를 뒤덮는다. 북핵문제가 선결돼야 정상회담이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반도의 주체로서 남북이 북핵문제 해결과 정상회담을 함께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바탕에 우리의 ‘역사감정’을 심기 위한 파격적 논쟁도 필요하다. 닭이 꼬꼬댁 거리는 것은, 알을 낳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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