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는 슬프다. 수신자의 이름도, 주소도 모르지만 그들은 애타게 부른다. ‘Dear Umma(사랑하는 엄마).’
8개국에 흩어져 사는 해외 입양인 16명이 기억에도 없는, 혹은 가물가물한 친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수신지는 국제교육문화교류협회(IECEF) 해외 입양인 모국방문 지원센터. 편지에는 ‘꿈에라도 보고싶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가 애처롭게 담겨있다. IECEF는 자칫 독백이 됐을 이 편지들을 모아 ‘부치지 않은 편지’ 두 번째 책으로 엮었다. 첫 권은 해외 입양 50주년인 지난 해 8월 나왔다.
편지 쓴 당사자 중 한명인 박수웅(22·미국명 로스 오크)씨와 편지수집서부터 편집까지 맡아 한 지원센터 최진경 간사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박씨는 솔직했다. 이젠 애써 친부모를 찾을 생각도 없다고 했다.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엄마와의 추억이 있어야 할 자리에 공허만 있어요." 한 살 때 버려진 그가 아는 것이라곤 이름과 버려진 주소(화양동 24-1번지 근처) 뿐이다. 어머니의 나라 한국은 입양서류에만 존재했다. "백인마을에 살아 동양인을 본 적이 없어요. 늘 따돌림을 당했고 인종차별은 일상이었죠. 전 한국사람도, 그렇다고 미국사람도 아니에요. 그냥 저 자신일 뿐이죠."
그는 편지에 한국의 미혼모 문제를 제기했다. ‘엄마는 희생자였습니다. 당신은 죄의식과 수치심만을 느껴야 했습니다…. 아이를 지킬 모든 어머니의 권리를 제가 보호할 것을 당신께 약속합니다.’ "왜 그런 편지를 썼느냐"는 질문에 그는 "미혼모와 입양아 문제는 개인적 차원을 떠나 구조적으로 해결돼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9월 찾은 모국을 예정된 3개월이 한참 넘도록 떠나지 못하고 있다. 국외입양인연대(ASK)에 가입해 입양단체 인사나 대학교수 등 전문가를 찾아 다니며 미혼모 지원활동계획을 수립하고 대안을 마련하는데 고심하고 있다. 그는 이 같은 일이 "냄새도, 소리도, 얼굴도 모르는 친엄마"에 대한 보답이자 용서라고 여긴다.
한국말을 못하는 그의 통역을 도와준 최 간사는 인류학을 공부하다 지난 해 5월 우연히 인터넷을 보고 IECEF에서 일하게 됐다. 매달 입양인 2~3명을 만나 한국에서의 홈스테이와 일자리를 소개하고 있다. "입양인이 20여만 명입니다. 그들의 다양한 삶과 힘든 사연을 냉철하고 건조하게 알리고 싶었죠. 친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편지를 원문 그대로 실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
‘부치지 않은 편지’는 벌써 3권이 준비되고 있다. "2권에는 딱 한편 상봉한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어요. 앞으로 더 많은 입양인이 친부모에게 ‘부친 편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사진 왕태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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