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지주회사인 ㈜LG와 LG전자 지분을 각각 5% 이상씩 매입한 소버린자산운용이 21일 기자회견에서 "LG 경영진에 적대적 의사가 없다"면서도 "필요하다면 LG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겠다"고 강조해 속내의 일단을 드러냈다.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그린메일(경영권을 담보로 주식을 비싼 값에 되파는 행위) 등과는 상관없는 우량주에 대한 포트폴리오 투자를 하면서도 간접적으로 LG 경영에 참여할 방침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 소버린의 설명 = 제임스 피터 소버린자산욧운용 대표는 이날 서울 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LG는 한국의 윤리적 비즈니스 리더십의 모델이 되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브랜드의 하나"라며 "LG의 현 경영진을 지지하며 따라서 정관을 개정하거나 이사후보를 추천할 의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SK는 LG를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 이번 지분 매입이 SK 경우와는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SK 주식 매집이 경영권 도전을 불사한 공격적 투자였다면, LG는 그야말로 ‘가치 투자’라는 설명이다.
◆ 경영참여 수위는 = 그러나 피터 대표는 "LG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제안을 내거나 의견을 제시하겠다"고 밝혀 단순 투자자로서 주어지는 수익만 기다리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LG가 부담스러운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정관 변경과 같은 수위는 아닐지라도 의사결정 방식의 개선이나 배당 제고 등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요구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LG의 가치 제고를 위해 지지부진한 통신사업(LG텔레콤) 정리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LG는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집요해질 경우 소버린에 맞서야 할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LG가 소버린의 지분을 5%이하로 떨어뜨리기 위해 지분율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 다른 의도 없나 = 소버린의 지분 매입이 SK 투자 건과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내달 11일로 예정된 SK㈜ 주총에 대비해 명분도 쌓고, 우호세력도 얻자는 전략이라는 것. 소버린은 이번 주총에서 최태원 회장의 이사 자격을 문제 삼는 한편, 집중·서면 투표제 도입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LG의 지배구조 우수성을 강조한 것도 ‘지배구조가 상대적으로 불투명한’ SK에 대한 개혁 명분을 강화하는 의도라는 것이다.
‘포스트 SK’ 용도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소버린의 SK㈜ 주당 평균 매입단가는 9,293원(21일 종가 5만7,900원)이어서 평가 차익만 1조원 대에 육박한다. SK에서 빠져 나올 명분을 마련하고 차익실현 과정에서 손실도 만회하자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소버린이 LG에 대해 주가 상승의 모멘텀을 잡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며 "쉽게 SK 주식을 처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 삼성전자 지분도 2003년 매입 시도
소버린자산운용이 2003년 삼성전자 지분도 매입하려 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1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소버린은 2003년 SK와의 경옅영권 분쟁이 촉발되기 직전 삼성전자에 "투자할 의사가 있다"며 기업설명회(IR)을 요청했지만 SK사태가 나면서 삼성전자측이 응하지 않아 무산됐다.
당시 IR에 관여했던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 IR팀이 소버린 본사가 있는 모나코를 출발하기 며칠 전 소버린과 SK와의 경영권 마찰이 일어나 투자설명회를 전면 취소했다"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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