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사진)의 소설집 ‘내 아내의 모든 것’(문학과지성사 발행)은 당혹스러운 책이다. 그 당혹감은 책에 실린 10편의 단편들이 이루는 극단의 스펙트럼에 기인한다. 그 스펙트럼은, 툭 까놓고 말해 선정성의 과잉이랄 밖에 달리 이르기 힘든 ‘통속’와 말랑말랑한 연애소설, 시점이 교차하고 현실과 환상이 혼융되는 ‘포스트모던’의 병치를 뜻한다.
‘피진(皮疹)의 가을’은 욕망과 현실의 간극에 신음하는 한 실존의 고뇌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피부 발진의 가려움증 때문에 긁고 또 긁어 살갗이 벗겨질 지경에 이르는, 그 쾌감과 자학의 반복이 마치 곤충의 변태와 탈피처럼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아니, 그렇게 욕망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희망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이를테면 초월적 꿈일 뿐이다. ‘동화와 신화 속에서 현실이 재현되듯, 현실 속에서 동화와 신화가 생생하게 재현될 수 있으리라고 등신같이 믿었던 것이다.’ 거듭, 그리고 끝내 좌절되는 꿈 앞에 그는 절망하지만 시지푸스의 운명처럼 좌절이 예정된 꿈은 끝이 없다. ‘이 모든 괴로움을 다시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 실로 순수한 절망이었다. 절망적인 권태의, 또다시, 시작이었다.’
연상의 이혼녀와 대학생의 사랑을 다룬 연애소설 ‘나의 가자미 색시’ 등 몇몇 작품은 서사나 소설적 장치 등의 가벼움이 지나쳐 되레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질 정도다.
최근 3년간 러시아에서 유학한 작가는 이번 소설집의 작품 대다수를 러시아에서 썼거나 손을 봤다고 한다. 그는 소설에서 ‘배운 자’의 냄새가 난다는 말이 싫더라고 했다.
"문학적 ‘격조’와 소설적 ‘재미’의 접점을 찾고자 고민하는 중입니다. 이번 소설집은 그 같은 고민의 한 흔적이 될 것입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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