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 <1343> 블러디 메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 <1343> 블러디 메리

입력
2005.02.18 00:00
0 0

어제 이 난에 등장했던 프랑스 기즈가(家) 사람들은 종교 전쟁 와중에 가톨릭 편에 서서 싸우며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결국 그 자신마저 베었다. 순수한 종교적 열정이었든 정치적 타산에 바탕을 둔 시늉이었든, 그 당시의 신앙은 드물지 않게 광기로 돌진했다. 그리고 그 광신이 피를 불렀다. 그 피흘림은 프랑스만이 아니라 해협 건너 영국에서도 별난 일이 아니었다. 메리 튜더(메리1세: 1516.2.18 그리니치~1558 런던)의 손에도 그런 피가 묻어있었다.

헨리8세와 폐비(廢妃) 캐서린 사이에 태어나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메리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하기 위해 결별했던 가톨릭에 광신적 애착을 보였다. 그는 1553년 이복동생 에드워드6세에 이어 즉위하자마자 잉글랜드를 가톨릭 국가로 되돌려놓기 위해 진력했다. 여왕은 라틴어 미사를 부활시켰고,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톨릭 국가 스페인의 왕자 펠리페와 결혼했고, 신교도 수백 명을 처형했다. 이복동생 엘리자베스(뒷날의 엘리자베스1세)마저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메리1세는 그 폭정 탓에 ‘피 묻은 메리’(Bloody Mary)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보드카에 토마토즙을 섞은 칵테일 블러디메리는 바로 메리 튜더의 별명에서 따온 것이다.

메리1세가 죽고 엘리자베스1세가 즉위하자, 잉글랜드인들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처형의 물줄기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준’ 젊은 여왕을 뜨겁게 환영했다. 신교도로 자란 이 새 군주는 그러나 이번엔 가톨릭측의 반체제 음모에 맞서야 했다. 그녀는 결국 역모의 상징적 인물인 메리 스튜어트를 처형했다. 스코틀랜드 여왕으로 군림하다 장로교파 신민들에게 쫓겨난 메리 스튜어트는 엘리자베스1세와 5촌간이었고, 어제 이 난의 주인공이었던 프랑수아 드 로렌 기즈의 생질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신앙과 권력욕은 피보다 진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