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초 서울 강서소방서에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오곡동 아시아나항공 건물 뒤 논둑에 독수리가 쓰러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늘의 제왕’답지 않게 굶어 지친 초라한 모습의, 그것도 드물게 서울에 나타난 독수리의 모습은 매스컴에 크게 보도됐다. 이런 상황에서 119 구조대가 도움을 청할 사람은 단 한 사람, 야생 조류와 함께 4반세기를 살아온 김성만(59) 한국조류보호협회 회장 뿐이다.
"녀석의 풀 죽은 모습에 가슴이 찢어집디다. 9㎏이 넘는 몸무게에 편 날개길이가 3m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새인데…. 월동지의 먹이가 적어 서울까지 들어온 거지요." 독수리의 왼쪽 날개에는 15번 인식표가 붙어있었다. 김씨가 지난 해 초 경기 파주 민통선 지역에서 구조, 한 달을 치료해서 날려보낸 놈이었다. 번식지인 몽골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김씨는 독수리를 용산구 한강로 2가 ‘다친 새들의 쉼터’로 옮겼다. 이곳에선 독수리 10마리와 참수리 3마리, 흰꼬리수리와 까마귀 각 1마리 등 모두 15마리가 보살핌을 받고 있다. 건강이 회복된 독수리 7마리는 내달 초 민통선 지역에서 날려보낼 계획이다.
여기서도 그의 휴대폰은 쉴새 없이 울려댔다. 대부분 다친 새들에 대한 신고지만 겨울풍경을 찾는 언론사의 사진기자, 작가들의 전화도 많았다. "팔당대교 밑에 고니 23마리가 떠있으니까 찍든지, 아니면 서강대교 위에서 한강 밤섬의 천둥오리나 고방오리, 원앙을 촬영해도 됩니다. 행주대교 수중보 밑에 가면 까마귀 떼도 있는데…." 그야말로 새들의 시시각각 움직임을 훤히 꿰고 있다.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밤섬의 새들과 놀며 자랐으니 김씨에게 새와의 삶은 거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1980년 협회를 창립하면서 직장일도 접었다. "사람도 굶는 형편에 아까운 곡물을 들판에 뿌려대느냐는 등의 욕도 많이 들었습니다. 혹 신고전화가 올까 휴일에도 사무실을 지키며 회의에 빠지기도 했지요." 이젠 환경에 대한 인식들도 많이 바뀌어서 활동하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김씨는 미국의 흰머리 독수리, 일본의 꿩처럼 우리도 국조(國鳥)를 갖는 게 소원이다. "예전 한국일보가 국민공모를 통해 까치를 나라새로 정한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공식 국조는 아니지요." 이미 조감도까지 완성한 5만평 규모의 야생조수류 천연기념물 보호센터 건립도 꿈이다.
그가 이토록 새에 집착하는 이유는 여느 환경보호론자들과 마찬가지다. "새들이 깃들지 못하는 땅에서는 사람 또한 살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도 그들의 생명을 빼앗거나 보금자리를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야생조수류 긴급구조신고 전화는 (02)749-4747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요즘 등산인구가 많이 늘었는데 산에 갈 땐 다들 고기나 비계 등을 조금 갖고 가도록 얘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바위나 나무에 놓아두면 산새들이 너무나 좋아할 거라며.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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