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씻을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이제 과거는 잊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17일 오후 2시30분께 광주 동구 학동 산자락에 자리잡은 사회복지법인 행복재활원.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휴대폰으로 모범답안을 전송해 주는 이른바 ‘선수’로 참여했던 재수생 정모(20)군은 중증장애인 120여명이 거주하는 재활원 내 3층 건물의 요양원에서 거실과 방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한때의 실수로 검찰로부터 선도조건부 기소유예를 받은 정군은 이날 같은 처지의 수능 부정행위 연루학생 33명과 함께 ‘참회의 봉사활동’을 했다. 평상복 차림의 이들은 오후 1시30분께 재활원에 도착, 간단히 재활원 소개를 받은 뒤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이 가장 먼저 체험한 봉사활동은 청소. 장애인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수건을 빨아 주는가 하면 비와 걸레를 들고 21개 방을 돌면서 청소를 했다. 이어 물리치료실과 거실 등에서 다리운동과 자세교정 등 정신지체장애인들의 재활을 도우며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5살배기 언어장애아의 몸을 마사지해 주던 문모(18)군은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을 느꼈다"며 "그 일(부정행위)을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재활운동을 돕던 조모(20)군은 펴지지 않는 다리를 들어올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원생들에게 자신의 노력이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자 눈물을 훔치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원생들은 이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도 같이 있어준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워하며 불편한 몸짓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때문인지 4시간 동안의 짧은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가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처음 드리워졌던 어두운 그림자 대신 환한 미소가 피어 있었다.
행복재활원 직원 전경미(26·여)씨는 "봉사활동에 나선 아이들이 처음에는 중증장애인들을 보고 거리감과 두려움을 느꼈지만 의외로 장애인들과 쉽게 어울렸다"며 "특히 수능 부정행위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빛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정군과 조군 등은 앞으로 광주보호관찰소가 마련한 보호관찰 프로그램에 따라 6개월에서 1년간 사회봉사활동 등 각종 체험활동을 하게 된다.
광주=글·사진 안경호기자 khan@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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