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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사회운동과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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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사회운동과 도덕

입력
2005.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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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은 긴 연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고향길 교통지옥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서울이 고향이라 고향에 갈 일도 없었던 터라 개인적으로 긴 연휴 동안 일상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이것저것을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요즈음 땅에 떨어진 우리 사회의 도덕이다. 돈 많은 동거남과 살기 위해 남의 아이를 유괴해 자기 아이로 속이려고 아이 엄마를 청부살인 하는가 하면 일부 교사들이 고위층 자식을 위해 가짜 답안을 작성해 좋은 성적을 만들어 준 사건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정말 충격을 받은 것은 기아자동차 노조의 취업 비리 사건으로부터 금융노련의 선거 부정 시비,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의 폭력사태 등 잇단 노동운동의 도덕적 탈선이다.

특히 기아자동차 노조 관계자가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비리 사건은 너무도 충격적이다. 그 동안 한국 정치를 공부하면서 얻은 지식, 그리고 직접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겪은 경험에 기초해 그래도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적인 사회운동 분야가 상대적으로 깨끗하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정치, 나아가 한국 사회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도덕성이다. 1987년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 진영에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박종철군 고문치사 및 은폐 사건으로 가뜩이나 없었던 정권의 도덕성이 치명타를 맞았기 때문이다. 사회운동도 마찬가지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회운동이 그나마 버텨온 것은 이 같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87년 민주화 이후 상승세를 타던 민중운동은 91년 분신 정국에서 도덕성에 결정적 타격을 받으면서 국민들의 외면을 받고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고 말았다. 노태우 정권과 수구 언론은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이라는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연이은 분신의 배후에는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선전함으로써 운동권의 도덕성에 흠집을 냈다.

학생운동의 경우도 학생들이 한 대학을 방문한 대학 교수 출신 총리에게 밀가루를 퍼부은 것과 관련해 스승도 모르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매도당해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한총련이 조직에 침투한 프락치를 잡는다고 프락치 용의자를 고문하다가 죽인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도덕성에 결정적인 타격을 받고 말았다. 싸우면서 적과 닮아가다가 파탄을 맞고 만 것이다.

이번 기아자동차 노조 사태는 단순히 기아자동차 수준을 넘어 한국 노동운동 전체의 반성을 촉구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물론 이번 사건은 노동조합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기아자동차 전체의 총체적으로 비민주적인 고용 관행에 기인한, 좀더 구조적인 문제이다.

즉, 사원을 공개채용이 아니라 연고주의적 방식에 의해 채용해 온 회사 측이 이 같은 관행에 대해 노조가 시비를 걸고 나서는 것을 막기 위해 노조에게도 일정 지분을 배정해 주는 당근 전략 내지 물귀신식 동반 타락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이는 기아자동차 측이 노조는 물론 사외의 다양한 권력기관에 대해서도 사원추천권을 할당해 관리해 온 데서 잘 드러난다. 이 점에서 이번 사건을 단순히 노조 비리 사건인 것처럼 몰고 간 일부 수구 언론의 보도 태도에는 문제가 많다.

그러나 노조 간부들이 이러한 회사 측 유혹에 넘어간 것, 나아가 그런 지분을 이용해 구직자들로부터 취업을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은 초심으로 돌아가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자기개혁을 해야 한다. 도덕성을 갖지 않는 운동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와 재계가 이번에 노조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이용해 비정규직 확대법안 등 노동개악을 시도하려고 한다면 그 또한 문제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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