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공부에는 방송통신고가 ‘딱’. 1974년 개교 이래 18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만학’의 대명사가 된 방송고가 사이버학교 변신을 앞두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일방향 라디오 방송 중심의 교육체제에서 인터넷을 이용한 쌍방향 사이버 중심 교육시스템으로 대대적인 개편을 준비중이기 때문이다. 시점은 2008년. 중등학력을 갖지못한 820만명의 잠재적 수요자들에게 교육기회를 확대하겠다는 목적에서다. 개발원은 현행 일반계 고교를 준용하는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종합계 고굵교 교육과정 방식을 채택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학생들의 교과이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경험학습을 교과이수와 연결시켜 졸업 이수단위를 70% 정도로 축소하는 안도 담겨있다. 개교 31년째를 맞은 방송고를 졸업하거나 재학중인 학생들은 "가정형편 등으로 놓친 공부의 즐거움을 뒤늦게 만끽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라고 전하고있다.
강원 속초상고 부설 방송고 2년 김동균(19)군. 속초의 넓은 영랑호를 카누로 가로지르던 김군은 체육특기생으로 일반고에 진학했다가 운동을 그만두면서 방송고로 편입했다. 중학교 시절 운동만 하다보니 일반고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 방송고를 선택했다. 같은 학교 국어생활 과목을 맡고있는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김군은 아버지 수업도 듣고있다.
반에 10대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김군은 "나이가 많은 ‘친구’들이 즐비해 장난을 못 치지만 그래도 많이 배우고 인생의 경험담을 듣는게 즐겁다"고 말했다. 목표는 컴퓨터 전문가. 김군은 "출석 수업은 한달에 두 차례이지만 평일 남는 시간은 컴퓨터 관련 공부에 몰두한다"고 말했다.
김영희 할머니(75·제주제일고 부설 방송고 3년)는 공부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어려서는 가난탓에 공부를 멀리할 수 밖에 없었고, 결혼후에는 남편과 일찍 사별한 뒤 30년 가까E이 보험설계일에 매달렸으나 늘 공부에 대한 갈증이 남아있었다. 공부를 더 하기로 결심한 김 할머니는 2001년 중졸검정고시를 치른 뒤 이듬해 칠순이 넘은 나이에 방송고에 입학했다.
학교측은 김 할머니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이라고 칭찬했다. 학교 관계자는 "김 할머니는 출석 수업일이면 반 학생들에게 전화로 출석을 독려하고 학교 화장실 청소 같은 궂은일에도 언제나 앞장서며, 3년간 개근은 물론 학업 성적도 우수한 모범생"이라고 귀띔했다.
나광수 할아버지(77·원주고 부설 방송고 3년)는 곧 받게될 고교 졸업장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졸업장을 받아들기까지 무려 5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교를 마치지 못했다. 군 제대 후 대한항공에 취직해 26년간 근무하다 89년 정년퇴임했다. 하지만 학업에 대한 열망은 정년퇴임 후에 더 타올랐다. 2003년 봄 우연히 TV에서 방송고 신·편입생 모집 광고를 보고 주저없이 방송고 2학년에 편입했다. 나 할아버지는 "젊은 학생들과 수학 과목을 듣다보니 머리회전도 빨라지고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활짝 웃었다. 나 할아버지는 원주대 관광통역과에 당당히 합격해 대학생이 되는 꿈에 밤잠을 설치고있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방송고를 택한 경우도 있다. 청주고 부설 방송고 심혜숙(50·3년)씨와 백진주(24·3년)씨가 주인공. 심씨는 고교를 중퇴한 딸을 방송고에 다니게 하기 위해 자신도 함께 입학키로 결심했다. 젊은 시절 남동생 뒷바라지에 자신은 공부를 포기했던 아픈 기억을 지우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어머니는 졸업 후 주성대 아동문학과에 진학할 예정. 딸도 사회에 기%2여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하고있다.
‘성공한 지방자치단체장’ 김세웅 전북 무주군수(52)는 88년 전주고 부설 방송고를 졸업했다. 산골 오지에서 태어난 그가 자라고 살아온 곳의 군수가 되기까지에는 한 줄의 글로 다 표현 못할 정도의 어려움과 노력이 숨어 있다. 초등학교 졸업 뒤 돈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친구들보다 2년 늦게 혼자 힘으로 중학교를 마쳤지만 고교 입학시험 한 달 전 어머니가 숨져 진학을 포기하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군복무를 끝내고 결혼도 했지만 공부에 대한 미련은 85년 방송고 입학으로 이끌었다. 방송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에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 지난해 2월 한양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따는 집념을 보였다. 김 군수는 "삶이 마치 들풀 같았다"며 "어려운 성장 과정이 오히려 힘을 줬고 자신감과 투지의 밑바탕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단순한 학력 콤플렉스 극복을 위한 만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충고했다. 졸업장만 따기위한 공부는 배움의 즐거움을 잊게 만든다는 것이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도움말 한국교육개발원 방송고 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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