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홍혜경(47)의 ‘라보엠’. 오페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올해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을 듯하다. 세계 오페라의 심장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20년간 주역으로 군림하고 있는 그녀가 드디어 한국의 오페라 무대에 출연한다. 3월 3~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그녀의 첫 국내 오페라 ‘라보엠’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콘서트와 독창회로 몇 번 우리나라에 왔지만, 오페라는 처음이다. 흥분한 팬들은 ‘여왕의 행차'라고 말한다. 이번 ‘라보엠'을 제작하는 예술의전당이 5년 공들인 끝에 성사시켰다.
한국인 성악가들이 노래 잘 하는 건 세계가 알아주는 바이지만, 홍혜경은 그 중 단연 최고로 꼽힌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해마다 빠짐없이 주요 배역으로 출연하는 동양인 소프라노는 그녀가 유일하다. 최근에는 비엔나의 슈타츠오퍼, 밀라노의 라스칼라 등 유럽의 오페라극장으로도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지난달에는 런던의 코벤트가든에도 데뷔했다.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남자 주인공 칼라프의 시녀 ‘류’로 나왔다. 러시아 출신 테너 갈루진 등 일급 가수들이 포진한 이 공연에서 그녀는 주역들을 제치고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 ‘푸치니를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지 홍혜경을 보고 배우라’ 는 평이 나와 주역 가수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홍혜경은 1984년 모차르트의 ‘티토 왕의 자비’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했다. 남들은 한번 서기도 어렵다는 이 무대에서 롱런하는 비결은 철저한 자기관리에 있다. 자신의 목소리에 맞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을 골라 차근차근 걸어온 덕분에 40대 중반을 넘긴 지금도 그녀는 최고의 오페라 가수로서 당당하게 우뚝 서 있다. "돌이켜보면 동양인으로서 제가 처음 시작한 무대가 많았어요. 그만큼 책임감도 컸고 그래서 더 조심하고 더 열심히 했어요. 많이 보고 들으면서 지금도 배우고 있어요. 항상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낫게’ 라고 다짐합니다. 끝이 없는 길이지요."
그녀의 소릿결은 섬세하고 서정적인 리릭 소프라노.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와 백작부인, 비제의 ‘카르멘’ 중 미카엘라, 푸치니 ‘투란도트’의 류, ‘라보엠’의 미미와 뮤제타 등에서 매혹적인 자태와 아름다운 노래, 빼어난 연기로 인정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드디어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로 출연,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라보엠’의 미미는 ‘라 트라이바이타'의 비올레타, ‘피가로의 결혼’의 백작부인과 더불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역이다.
"미미는 제게 아주 잘 맞는 역이에요. 애쓰지 않아도 제 자신이 바로 미미가 된 듯 자연스럽죠. ‘라보엠’은 미미의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이지만, 희극적 요소가 많은 작품입니다. 사랑과 인생을 즐기는 젊은 보헤미안들의 떠들썩하고 유쾌한 드라마이니까요. 푸치니가 작곡한 음악도 정말 훌륭해요. 한군데도 버릴 것이 없죠. 오페라를 한번도 안 본 사람이라면 ‘라보엠’을 보라고 권하고 싶군요."
홍혜경은 이번 서울 공연에 이어 5월 라 스칼라의 ‘라보엠’에도 미미로 출연한다. 9월에 시작하는 메트로폴리탄의 2005/2006 시즌에도 ‘라보엠’의 미미, ‘피가로의 결혼’의 백작부인 등으로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 英 최고 연출가의 무대… 화려한 출연진… ‘라보엠’ 중의 ‘라보엠’
이번 ‘라보엠’은 영국 로열 오페라 프로덕션이다. 영국의 자랑인 최고의 연출가 존 코플리가 1974년 코벤트가든에서 처음 선보였던 이 무대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선 하나 바뀌지 않고 올라가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코리안심포니가 반주하는 이번 공연의 지휘자는 줄리어스 루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뉴욕 시티 오페라에서 22년 간 총감독과 수석 지휘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오페라 명반을 남긴 명 지휘자다.
출연진도 몹시 화려하다. 극중 미미의 연인인 시인 로돌포(테너)에 리처드 리치, 로돌포의 친구인 화가 마르첼로(바리톤)에 노대산, 마르첼로의 연인 뮤제타(소프라노)에 황후령 등 최고의 가수들이 홍혜경과 한 팀을 이룬다. 모두 홍혜경이 선택한 가수들이다. 리처드 리치가 1989년 ‘라보엠’으로 메트로폴리탄에 데뷔할 때 파트너가 홍혜경이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파바로티 외에 로돌포를 이만큼 잘 부르는 테너는 없다"고 극찬했다. 현재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를 중심으로 활동 중인 황후령은 조수미, 신영옥 등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꼽힌다.
홍혜경 팀 외에 김향란, 이응진, 김승철, 박미자 등 국내 가수들로 또 한 팀이 번갈아 출연한다.
‘라보엠’은 가난한 시인 로돌포와 폐병에 걸린 그의 연인 미미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그대의 차가운 손’ ‘내 이름은 미미’ 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 아리아를 비롯해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음악 속에 파리 뒷골목 가난한 예술가들의 낭만과 사랑이 때로는 익살맞게 때로는 가슴 저미게 펼쳐진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고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공연 문의 (02)5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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