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가 살던 시대는 르네상스가 꽃피던 시절이었다. 특히 그의 조국 이탈리아는 유럽의 어떤 나라들보다 인간 중심의 새로운 문화가 발달했으며 중세적인 잔재를 제일 먼저 극복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화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는 중앙집권적인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몇몇 유력한 도시에 권력이 분산돼 근대국가로의 정치적 발전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키아벨리가 그린 근대국가로서의 이탈리아는 하나로 통일되고, 절대군주가 때로 능숙한 가장과 위선을 통해서라도 강력한 현실정치를 펼쳐나가는 그런 국가였다. 그래서 그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통치자의 부도덕한 권력 남용마저도 용인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키아벨리는 다수를 위한, 특히 국가로 대변될 수 있는 전체를 위해 효율적이고 유용하다면 수단의 도덕적 선악은 상관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 부활한다면 어떨까. 무엇보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21세기형 권력에 대해 그는 어떻게 해석할까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과거 수십 년 세월보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이후 10여년 동안 훨씬 더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정치 9단쯤 되는 인사들이 온갖 형태로 합종연횡을 해야 간신히 쥘 수 있던 권력도 오늘날 인터넷에서는 손쉽게 창출된다. 제한된 방법으로만 가능했던 대중들의 참여 역시 사이버 광장에서는 쉽고도 자유롭다. 정치인들의 과거 행적을 조사한 내용을 종합해 국회의원 적격 여부를 판단해 인터넷에 띄우면 대개는 결과도 그렇게 된다. 이 얼마나 투명하고 생동적인 세상인가.
인터넷을 통한 참여와 감시 기능은 사회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세계최강 미군의 장갑차에 무고하게 희생된 두 여중생의 넋을 위로하는 네티즌들의 촛불은 온 국민의 관심을 끌어냈고 마침내 미국의 사과도 받아냈다. 오랫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수능 부정사건 역시 인터넷이 제일 먼저 고발했다. 인터넷은 종종 여론조작마저 불사해온 일부 제도언론의 힘조차도 무력화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자칫 무소불위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인터넷의 권력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 모두에게 되돌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최근 한 언론학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인터넷이 가져다 준 효과는 더 이상 장점만 나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금력과 권력이 점차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최근 교육현장에서 일어난 체벌행위가 인터넷에 유포된 뒤 해당 교사의 행위를 절대악으로 만들어버린 일방적 여론몰이는 인터넷의 역기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모든 가치판단을 단순화해 버리는 디지털형 인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엿보고, 공든 저작물을 공짜로 다운 받기 위해 정보공유론을 주장하며, 익명성 뒤에 숨어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가혹한 사이버테러를 가하기도 한다. 이러면서도 정작 우리의 사생활도 어느 사이에 노출되고, 나 자신도 또한 타인의 일방적 공격대상이 될 수도 있음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라는 공동체가 아니라 너와 나로 분열돼 가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투명성과 선명성만을 마치 절대 진리처럼 떠받드는 사이에,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통합과 화해는 사라지고 분열만이 남을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전체를 위한 권력이 가장 자발적으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인터넷이 도리어 우리의 공동체를 위협하고 다양성을 차단하는 존재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권력을 분산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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