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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337> 마리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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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337> 마리에트

입력
2005.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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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년 2월11일 프랑스 고고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불로뉴쉬르메르에서 태어났다. 1881년 카이로에서 졸(卒). 마리에트는 19세기 프랑스 고고학을 이끌었던 ‘이집트의 연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28세 때 루브르박물관 이집트부에 취직한 그는 이듬해 콥트어(16세기까지 아프리카 기독교도들이 사용하던 고대 이집트어 계통의 언어) 문서를 매입하라는 박물관의 지시로 이집트에 파견됐다. 마리에트는 파견지에서 자신의 임무 수행에는 실패했지만, 멤피스신전(세라피움)을 비롯한 고대 이집트 유적들을 발굴하며 이 고대문명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유럽으로 돌아온 마리에트는 당대 고고학의 중심이었던 베를린에서 이집트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뒤 다시 이집트로 건너갔다. 주변부 지역에서 활동하는 중심부 지역 출신 고고학자들은 식민주의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상례다. 마리에트도 그런 ‘원초적 본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두드러진 양식을 지닌 사람이었다. 고대 유물들이 비밀리에 또는 공공연히 유럽으로 마구 반출되는 것에 경악한 마리에트는 발굴된 유물들의 현지 보존을 주장했고, 1858년 카이로 근교 불라크에 이집트박물관을 세워 이를 실행에 옮겼다. 1902년 카이로 시내로 자리를 옮긴 이집트박물관에는 이집트 각지의 수많은 유물·유적이 모여 이집트학의 일차 질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집트의 진정한 연인으로서 마리에트가 남긴 업적은 아비도스 유적을 포함한 유물·유적을 숱하게 발굴하고, 사이드 파샤 부왕의 도움으로 이집트 고대유물청을 개설하고, 고대 이집트의 문헌학·신화학·역사에 대한 저서를 여럿 쓴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수에즈운하 개통을 기념해 이스마일 파샤의 요청으로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 ‘아이다’의 가사를 씀으로써, 고대 이집트를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의 무대로 만들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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