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 참조기 풍년 들듯이, 이번 설에는 온 국민 마음속에라도 풍년 좀 들었으면 좋겄어." "조기들이 미쳐부렀당께라. 요즘 추자도에서 조기는 개도 안 먹어라." 목포에서 페리로 2시간30분. 한반도 서남단과 제주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섬 추자도. 상·하추자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 무인도까지 모두 42개의 섬으로 구성된 추자군도는 주민들의 말처럼 요즘 "미쳐버렸다." "35년 동안 뱃일 했지만 이렇게 조기가 많이 잡힌 것은 처음"이라는 게 추자유자망선주협의회장 김활민(56)씨의 말이다.
설ㆍ추석 명절 제수의 으뜸이자, 한겨울에는 쫄깃한 굴비로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해 온 어종이 참조기다.
한동안 남획으로 씨가 말라버려 ‘조기값이 금값’이라는 말까지 낳았던 조기가 요즘 사상 유례없는 대풍이다. 지난해 9월 이후 조기 대풍의 한가운데 있는 추자도는 섬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다.
4일 오전 10시 상추자도 선창가. 주렁주렁 그물에 걸린 고기들을 선별하는 어민들로 북적거린다. 만선으로 돌아온 선원들을 반기려 가족들은 삼겹살 가득한 김치찌개 그릇을 이고 오고, 인근 다방에서는 커피까지 무료로 돌리고 있었다. 유자망 대창호 선주 겸 선장 지의석(51)씨는 선원 5명과 새벽 5시 앞바다로 조업 나갔다가 만선으로 입항했다. "조기는 이제 징그럽다"고 ‘징그러운’ 웃음을 띠며 말한 그는 "9월부터 조기잡이로 하루 평균 2,000만원어치의 어획고를 올렸다"고 했다. 이날도 그물작업을 시작한 지 5시간만에 거짓말 같이 배를 가득 채우고 돌아왔다. 지씨는 "잠시 눈 붙이고 오후 3시30분에 다시 그물 놓으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 어업생산통계에 따르면 2004년 참조기 어황은 전년 대비 147.5%나 늘어났다. 2003년 7,098톤이던 생산량이 지난해 1만7,570톤으로 급증했다. 멸치 볼락 넙치 등 어종의 작황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울뿐이다. 이 같은 조기 대풍은 서해의 고수온 지속으로 인해 조기들의 남하 회유가 지연되면서 연안에 어군이 형성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원래 조기는 3월쯤 전북 위도를 거쳐 6월에 압록강 연안까지 올라갔다 8~10월 월동을 위해 제주도 남쪽을 거쳐 중국 상하이 해역으로 이동한다. 월동을 위해 남하하던 조기떼가 바다 수온 상승으로 지난해 가을부터 추자도 근해에 몰려든 것이다.
"밥도둑이라던 굴비가 올해는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 추자도 주민들은 "외지 나간 가족과 친지들에게 인심 쓰느라 야단"이란다. 하루 조업에 3,000만원어치의 어획고를 올린다는 김모(53)씨는 수협 위판 후 남은 조기를 인천 사는 처형에게 300마리, 부산 포항 사는 친구에게 각각 200마리 1상자씩 보냈다며 웃었다. J택배 대표 고모(50)씨는 "택배 물량이 3배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자동차로 20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섬 추자도는 이렇게 출항 어선들이 돌아오면 온통 축제 분위기다. 어선 60여척이 한꺼번에 입항하면 선원 700여명과 전국에서 찾아온 중매인들이 선창에 몰려든다. 자식 공부시키느라 제주나 목포, 서울 등지로 아이들을 떠나보낸 ‘추자도 기러기 아빠’들이 많은 선원들은 모처럼 근심 덜고 대풍에 웃음 짓고 있다.
추자도는 1896년 전남 완도군에 편입됐다가 1910년에 제주도로 조정됐다. 완도-추자도-제주도, 목포-진도(벽파)-추자도-제주도로 가는 페리와 쾌속정이 하루 각 1차례 운항한다. 이 섬마을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살아났다. 사실상 설 연휴가 시작된 5일 설을 쇠러 추자도여객선터미널에 젖먹이를 안고 도착한 조모(32·서울 성북구)씨는 "오랜만에 고향의 조기 대풍 소식을 듣고는 귀향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며 "올해는 제발 우리 서민들 살림살이도 늘씬한 참조기 맵시처럼 좀 좍 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추자도= 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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