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입니다. 역경은 어차피 누구에게나 닥치기 마련입니다. 장애인이라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힘들 내세요." 25일 한양대에서 열리는 2005학년도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 3급 지체장애인인 김형민(64)씨가 문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의 논문 제목은 ‘신심(信心)서적 영한번역 방법에 대한 대조연구.’ 신심서적이란 종교관련 책을 일컫는 것. 특히 기독교 서적 번역과정에 일반 번역이론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 지와 무엇을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지를 검토한 논문이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친 그는 미국 국무부 장학생으로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1968년귀국 후 10년 동안 모교에서 강사생활을 하다 개인적 인연으로 75년 모 대기업의 해외담당 상무로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남부러울 게 없는 삶이었으나 80년 뜻밖의 정치적 격변에 휘말렸다. "회사가 신군부에 의해 공중분해 됐습니다. 부장급 이상들이 잡혀가 전기고문을 당했지요. 저도 지명수배자가 되는 처지가 됐습니다."
설상가상으로 83년 어느날 언어장애·기억력장애·안면신경마비라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패기만만하던 그가 하루 아침에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놀릴 수 없는 장애인이 된 것이다. "일 중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살았으니 건강에 문제가 생긴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지요. 회사 생활 내내 3~4시간 이상 잔 일도 없으니까요. 병원 관계자는 못 깨어나고 세상에 마침표를 찍을 지도 모른다고 부인에게 그랬다네요." 병명은 뇌경색이었다. 오른쪽 뇌 혈관이 막혀 왼쪽 손 발도 쓰게 못하게 됐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절망에 빠져있던 85년 한글날 한 가닥 희망의 빛이 찾아 들었다. 언어장애가 풀려 오물을 받아가며 고생한 부인을 한 시름 덜게 한 것이다. 이때부터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고 뒤늦게 신앙적 체험을 했다는 점에서 같은 ‘아우구스티노’를 세례명으로 삼았다. 한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가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 동안 번역한 책만 해도 9권이나 된다. ‘주여, 왜?(생활성서사)’는 테레사 수녀에 관한 이야기인데 방송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고통 속에 있는 누구든 읽으면 좋겠다"고 추천하는 바람에 20쇄까지 찍었다. 88년부터는 영한 동시통역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학생들에게 ‘언어와 문학’을 가르칠 생각입니다. 몸이 불편해 간혹 버스에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되기도 했지만 하루하루가 행복하기만 합니다. 그 전까지는 교만하게 머리로 가르쳤지만 이젠 마음으로 가르칩니다. 어느 종교나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희망을 주는 법이지요."
박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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