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 2월5일 조아키노 로시니의 2막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가 로마에서 초연됐다.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오귀스탱 보마르셰의 동명 희극(1775)에 바탕을 두고 체자레 스테르비니가 대본을 쓴 ‘세비야의 이발사’는 스페인 세비야 부근에 사는 알마비바 백작이 이발사 피가로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귀족 처녀 로시나와 결혼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원작을 그득 채우고 있는 기지와 풍자는 로시니의 경쾌하고 풍부한 소리에 녹아 들며 당대 이탈리아 오페라의 최고 걸작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국에서는 1960년 7월 프리마 오페라단이 처음 무대에 올렸다.
보마르셰의 원작은 이 극작가의 명성을 결정적으로 확립한 작품이다. 보마르셰는 1784년 ‘세비야의 이발사’의 속편 ‘피가로의 결혼’을 썼다. 전작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하던 알마비바와 피가로가 하녀 수사나를 놓고 벌이는 갈등을 그린 이 작품은 두 해 뒤 오스트리아 빈에서 모차르트의 4막 오페라로 다시 태어났다. 보마르셰의 연극들도 당대 파리 사람들을 열광시켰지만, 오늘날 우리들이 ‘세비야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이라는 표제에서 대뜸 떠올리는 것은 연극이라기보다 로시니와 모차르트의 오페?%4라다. 지하의 보마르셰가 그걸 기뻐할지 슬퍼할지는 알 수 없지만.
‘세비야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의 무대 세비야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세비야주(州)의 주도다. 과달키비르강 상류에 자리잡은 이 도시의 로마 시대 때 이름은 히스팔리스였다. 코르도바나 그라나다 같은 안달루시아 지방의 다른 도시들처럼 세비야도 중세 이슬람 문명의 흔적을 짙게 간직하고 있다.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을 바탕으로 조르주 비제가 작곡한 오페라 ‘카르멘’(1875)도 이 도시를 무대로 삼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세비야를 예술의 지도에 표시해놓은 사람들은 대개 외국인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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