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파괴되기 전에 인간의 영혼이 먼저 파괴된다고 합니다. 더구나 환경의 재앙은 우리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손 만대에까지 유전되며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2004년 10월 21일 지율 스님의 일기 중에서)
지율 스님의 목숨 건 단식 끝에 경부고속철도 천성산(경남 양산시) 관통구간 공사가 일단 중지됐다. 4일에는 새만금 방조제 사업을 재고하라는 뜻을 담은 법원 판결도 나왔다. 한국사회는 좀 거창하게 말한다면 지금 패러다임의 시련을 겪는 중이다. 자연개발과 환경보전 중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 간이역/ 자연과 느림에 대한 존경을 -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엮음
환경을 우선해야 한다고 몸으로 웅변한 사람이 지율이다. 최근 출간된 ‘간이역-느림으로 가는 정거장’(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엮음·그물코 발행)에는 ‘교통 좀 편하자고 무제치늪 원효늪 밀밭늪 등 천성산 고산습지의 도롱뇽을 죽이는 짓은 하지 말자’는 지율의 목소리와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의 뜻이 담겨있다. 제목이 ‘간이역’인 것은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 제정한 ‘풀꽃상’의 지난해 제10회 수상자가 간이역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자며 해마다 자연물에게 상을 주는 이 단체가 풀꽃상의 메시지를 전하자는 취지를 담아냈다.
전국 635개 역사 가운데 308곳이 적자고, 그 중 104곳은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평가결과도 있다. 간이역을 완행열차의 정류장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고속철로 3시간도 안 되어 서울서 부산까지 닿는 세상에 특별히 그런 역이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필자들은 시와 소설, 에세이를 통해 산과 바다와 강을 뚫고 빨리, 자꾸 빨리만 내달리는 세상에 간이역이 느림의 철학을 던져주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느림의 한가운데서 지율처럼 ‘우리 심장의 박동이 자연의 리듬과 공명’하도록 하는 필사의 노력이 있다고 말한다.
■ 지율, 숲에서 나오다/ 단식일지·편지 등 모아 - 지율스님 지음
지율의 천성산 지키기를 자세하게 알려면 지난해 지율 스님이 써 낸 ‘지율, 숲에서 나오다’(숲 발행)가 도움이 된다. 양산 내원정사의 비구니이자 시인이며 사진작가이기도 한 스님이 2003년부터 여러 차례 단식기도하며 쓴 일지 등을 모은 책이다. 단식 25일을 맞은 2003년 어느 늦은 밤, 어머니에게서 "남들처럼 살면 안 되느냐"는 전화를 받고 밤새 잠 못 이룬 스님의 고백, 단식이 길어E지면서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이를 안타깝게 지켜본 초등학생 대학교수 농부 시인이 보낸 글과 세계적인 영장류 연구가 제인 구달의 메시지 등도 실려 있다.
■ 법정에 선 나무들/ 자연도 법적 권리가 있다 - 크리스토퍼 스톤 지음
천성산 지키기 운동은 동물, 즉 도롱뇽이 원고가 된 국내 첫 소송으로도 유명하다. 산이나 바다, 강, 동식물 등 자연 스스로가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법정에 선 나무들’(크리스토퍼 스톤 지음·아르케 발행)은 인간중심주의를 뒤집은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책을 쓴 미국 법학자는 자연물을 원고로 한 미국 독일 일본의 실제 소송, 승소 사례를 제시하면서 적극적인 환경보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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