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
이강옥 글, 이부록 그림. 보림.
온갖 문명의 이기에 둘러싸여 서구식 생활을 하다가도 제사를 지낼 때마다 내가 유교적 전통을 이어가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느낀다.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제사를 모실 때는 오로지 격식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급급했으나 한 번 두 번 거듭하면서 우리 민족의 가치관과 생사관, 귀신에 대한 개념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빠의 귀신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은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을 우리나라의 귀신 이야기를 통해 제시한다. ‘병세재언록’ ‘학산한언’과 같은 조선시대의 야담집 10여종에서 뽑은 30여 편의 귀신담을 열 한 가지 갈래로 나누고 각 유형의 귀신 이야기가 생겨난 배경과 그 이야기에 담긴 의미를 설명한다.
흔히 ‘귀신’ 하면 떠올리게 되는 하얀 소복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입가에 피를 흘리는 여자귀신은 억울하게 죽어 원한을 품은 원귀일 뿐, 귀신의 종류는 많다. 보통 귀신이라 할 때는 신과 귀신을 모두 가리키며 신은 사람을 돌보고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안내해 주는 존재이다. 그래서 나무 산 물과 같은 자연에 깃든 목%1신 산신 수신과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신, 집을 지켜주는 성주신, 부엌의 조왕신 등이 등장하는 귀신이야기는 다양하다.
원귀에 여자가 많은 것은 전통사회에서 여자에 대한 제약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며, 농사도 짓지 않고 뽕나무도 키우지 않아 풀옷을 입고 물만 마시고도 영원토록 사는 귀신들의 이상한 섬 이야기는 배고픔의 고통과 길쌈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민초들의 소망이 반영된 것이다.
또 아이로 다시 태어난 구렁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의 잘못을 지적하는 등 이 책은 귀신이 등장하는 옛날 이야기에 대한 인문교양적 접근이라 하겠다. 결국 귀신이야기는 등골이 오싹해지도록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이 멀지 않으며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 이 세상에서 더 잘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설을 맞이하여 차례 준비에 바쁜 엄마 대신 아빠와 아이들의 대화 주제로 삼아보면 좋을 이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어른까지, 읽는 이의 수준에 따라 다른 층위의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연령이 높을수록 ‘이야기 시작’과 ‘이야기 끝’, ‘뒷글’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으라고 권한다.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기억에 가물가물한 이야기들이다. 미국 소설 '립 반 윙클’은 읽었어도 그와 유사한 ‘이상한 섬’은 몰랐던 세대인지라, 우리나라 귀신 이야기를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요즘 어린이들이 새삼 부럽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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