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 빠졌던 살인사건을 끈질긴 추적 끝에 해결하는 영화 ‘공공의 적’ 같은 일이 실제 벌어졌다.
사건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폭우가 쏟아지던 2001년 8월14일 새벽 발생했다. 밤늦게 귀가 중이던 증권회사 여직원 A(당시 23)씨가 서울 마포구 도화동 지하철 마포역 인근에서 괴한의 흉기에 찔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만에 숨지고 말았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흉기로 찔렀다"는 게 A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증언이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 마포경찰서는 전담반을 편성해 현장 주변 탐문과 일대 우범자들에 대한 수사에 나섰으나 남겨진 단서가 거의 없어 답보 상태가 계속됐다.
사건 발생 1년7개월 만인 2003년 3월 마포서는 훔친 차량을 이용해 강도 행각을 벌이던 김모(24)씨를 강도상해 등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김씨의 차량에서 혈흔이 묻은 잭나이프 등을 발견했으나 A씨 살인사건과는 연관짓지 못한 채 강도상해 혐의와의 관련성만 조사했고 김씨는 이 혐의로 기소돼 6년6월 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김씨가 중요한 범행과 연관됐을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마포서 김승배(52) 경사는 이후 여유가 생길 때마다 김씨 주변에 대한 탐문 수사를 계속했고 지난달 귀가 번쩍 뜨이는 증언을 얻어냈다. 과거 김씨의 직장동료였던 B씨가 "김씨와 함께 잠깐 살았을 때 김씨가 ‘2001년 여름 마포역 부근에서 핸드백을 빼앗으려다 여자를 흉기로 찔렀는데 아마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진술한 것. 진술자는 ‘농담이었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지만 김 경사는 A씨 살인사건을 떠올리며 살해범 임을 확신했다. 김 경사는 김씨와 영등포구치소에 함께 수감된 적이 있던 C씨에게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고 결국 영등포구치소에서 복역 중인 김씨를 찾아가 추궁한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경찰은 4일 김씨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했으며 곧 김씨에 대해 살인 혐의를 추가해 송치할 계획이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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