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의 요정’ 박정현(29)은 정말 작다. 공식 프로필에 기재된 신장은 불과 155㎝. 그러나 그게 무색할 정도로 박정현은 작아 보이질 않는다, 적어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 만큼은. 아직도 계속 자라고 있는 건 아닌지. 뒤통수를 치는 그의 대답. "어디에 그렇게 나와있어요? 틀렸는데요. 실은 150㎝에요."
3일 세상에 나온 박정현의 5집 ‘On&On’은 2년 6개월만의 정규 앨범이다. "저도 많이 기다렸어요. 하지만 쥐어짠다고 음악이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음악이 때를 알려주길 기다려야 했죠."
아일랜드의 뉴에이지 가수 엔야를 연상시키는 보컬이 실린 ‘Ode’로 시작하는 5집은 듣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앨범이다. R&B는 말할 것도 없이 팝 재즈 뉴에이지 왈츠 프로그레시브록 등을 넘나들며 분위기가 변화해 곡이 끝날 때마다 ‘다음은 어떨까’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끊임없이 음악의 진보를 추구한다’는 포부를 담은 5집에서 박정현은 처음으로 직접 프로듀싱을 했다. "자유롭게 제 의견을 반영할 수 있었고 책임도 커졌죠. 종전보다 제가 작곡한 곡이 많아졌고, 처음으로 우리말로 작사를 했어요." 급한 성격이라는 그가 음악 설명에 열띤 표정이다. 때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부분에 부딪쳐 답답해지면 노래를 부르며 설명할 정도로 정말 열심이다. "팬들이 기대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것만 해서는 발전이 없죠. 그동안 새로 배우고 느낀 것들도 많고 사람도 살면서 조금씩 변하는데, 음악에서도 그 변화를 보여주는 게 자연스럽지 않겠어요. 음악도 뭔가 발전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제가 외로워요."
변화무쌍하다. 타이틀곡 ‘달’은 지난해 일본에서 싱글 데뷔한 ‘폴 인 러브(Fall In Love)’를 우리말로 옮긴 곡으로 중국 현악기 얼후 연주가인 첸민의 연주곡을 보컬 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 아카펠라그룹 테이크식스의 데이비드 토마스, 앨빈 체의 목소리를 반주 삼아 들어가는 ‘알아볼게요’에서는 "재즈를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는 바람을 이뤘다. 정석원이 "드라마틱한 곡을 써주겠다"며 준 ‘하비샴의 왈츠’는 곡의 전개가 기가 막히게 반전한다. 연인과 이별한 여인이 몸은 헤어졌어도 영혼은 그를 떠나지 못하는 애달픔을 노래한 ‘고스트’는 뉴에이지 분위기도 난다.
오케스트라 현악 연주가 확장되면서 가녀린 보컬에 힘이 실리고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목소리에 ‘역시 박정현’하고 감탄을 자아낸다.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를 듣고 부르며 다듬은 창법은 스스로 듣기에도‘R&B스럽다’고 한다. 라디오헤드나 U2 등 록음악부터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듣지만 목소리는 변함 없다. "에릭 클랩튼이나 레드 제플린도 제가 부르면 R&B 같아져요. 이번 앨범에서도 어떤 걸 들어도 R&B같다고 할 걸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란 그가 한국에 와 가수가 된 지도 8년. 요즘에는 일본 활동을 병행하느라 정말 정신없이 산다. 일본 듀오 케미스트리와 ‘2005 한·일 우정의 해’ 공식 주제가를 부르기도 한 그는 당장 설 연휴를 일본에서 보낸다. 덕분에 2001년 늦깎이로 입학한 대학(컬럼비아대 영문과)은 언제 마칠지 가늠조차 못한다. 콘서트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박정현은 4월께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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