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고만한 분식집, 화장품점, 휴대전화 대리점, 패스트푸드점. 10~20대를 겨냥한 가게들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고 또 사라지고 있지만 명동에서 추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변해버린 명동 거리가 심드렁해졌다면 잠깐 눈길을 돌려보자.
중앙시네마에서 가톨릭회관을 거쳐 창고극장에 이르는 이른바 ‘진고개’ 언덕. 이곳은 흥륭했던 명동 청년문화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통기타카페의 거리다. 10평 안팎, 테이블 4~5개에 불과한 가게들은 미사리나 백마의 규모만 못하지만 여전히 통기타 음악이 흐르고 추억이 스쳐간다. 고개 초입의 ‘무아’로부터 시작해 창고극장 앞 ‘필’로 끝나는 이곳의 카페들을 순례하고 나면 마치 1970~80년대로 시간여행을 한 기분이 든다.
이곳에 통기타카페들이 생겨난 것은 대략 90년대 들어서면서다. ‘돌체’로 대표되던 클래식다방, DJ가 LP판을 골라 음악을 틀어주고 무명가수들이 공연도 하던 ‘쉘부르’ 등의 명소가 명동에서 사라진 이후다. 30년간 주인이 7번 바뀌면서도 명맥을 이어온 ‘섬’을 제외하고 카페들의 역사는 대개 10년 안팎이다.
가장 전통적인 통기타 라이브카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은 ‘무아’다. 3명의 무명가수들이 손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길 건너 세무서 공무원과 중년줄에 접어든 옛 대학노래패들과 명동성당의 신부님까지, 손님들은 이수영 채은옥 남궁옥분의 노래를 들으며 회상에 잠겨있다. 영화시간을 기다리다 우연히 들렀다는 20대의 대학생들은 놀랍다는 표정이다. 김희정(23·강북구 수유동)씨는 "명동에도 노래를 들려주는 카페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며 "발라드나 댄스음악이 최고인줄 알았는데 옛 포크음악의 가사는 마치 편지를 읽어주는 느낌이 든다"고 감탄했다. 80년대 민중가요를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섬’, 재즈를 즐기며 연극인들을 만날 수 있는 ‘필’도 단골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진고개 언덕 쪽 말고 최근 명동에 또 하나의 상징적인 통기타카페가 생겨났다. 옛 코스모스백화점 길 건너 골목에 지난해말 문을 연 ‘돌고래 2004’ 가 그곳. 이곳은 바로 ‘은성주점’ 자리다. 은성주점은 명동을 사랑해 ‘명동백작’으로 불렸던 소설가 이봉구를 비롯해 50년대 변영로, 박인환, 전혜린 등 한국문학사를 수놓았던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은성주점은 이후 30여년간 ‘돌고래다방’으로 명동 넥타이부대의 발길을 붙들었다. 다시 몇 년은 노래방, 당구장으로 변했던 것이 대학 록밴드 %C출신의 신경무(36)씨가 옛 명성을 되찾겠다며 통기타카페로 탈바꿈시켰다. 신씨는 "인디밴드 음악과 클럽문화가 대세인 홍대 앞에 가기도, 상업특구로 전락한 대학로 가기도 부담스런 30~40대를 위한 공간"이라며 "포크음악의 묘미를 아는 직장인 밴드들을 초청공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명동 사람들은 이런 통기타카페들의 부활을 ‘소비’가 압도하던 명동에 ‘문화’라는 정체성이 되살아나는 징후로 보고 있다. 60~80년대 이곳에서 ‘동서화랑’을 운영했던 장석은(66)씨는 "통기타카페의 부활, 국립극장의 재유치 움직임 등 명동에 분명한 변화의 기운이 느껴진다"며 "옛 명동의 추억과 낭만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사진=홍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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