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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영화세상/ 같은 듯 다른…동갑내기 희극왕-짐 캐리 vs 저우싱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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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영화세상/ 같은 듯 다른…동갑내기 희극왕-짐 캐리 vs 저우싱츠

입력
2005.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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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판타지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이하 ‘레모니 스니켓’)과 만화 같은 액션 ‘쿵푸 허슬’의 공통점 세 가지. 모두 최근에 개봉했고, 코미디이며, 주연을 맡은 두 배우를 빼놓고는 존재하기 힘든 영화이다. 짐 캐리와 저우싱츠(周星馳). 한때 짐 캐리를 주연으로 저우싱츠의 ‘식신’이 리메이크된다는 얘기가 있었을 정도로 둘은 유사하면서도 사실은 꽤나 다르다. 올해로 마흔 네 살 동갑내기 두 배우는 현재 알파벳 문화권과 한자 문화권을 대표하는 코믹 스타. 그들의 대차대조표를 그려본다.

김형석·률석·월간스크린기자

짐 캐리와 저우싱츠의 공통점 또 하나. 메이크업을 걷어내고 본 ‘일상의 그들’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을 해도 될 만큼 잘 생긴 외모의 소유자이며 살짝 ‘오버’하면 섹시하기까지 하다. 특히 짐 캐리는 영화사상 분장한 얼굴과 실제의 얼굴 사이에 가장 큰 격차를 지닌 배우다. 우리가 그의 진짜 얼굴을 처음 목격한 영화는 ‘트루먼 쇼’ 아니었을까? 이후 그는 ‘마제스틱’이나 현재 개봉을 앞둔 ‘이터널 선샤인’ 등에서 오버 액션 전혀 없으며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짐 캐리를 보여주었지만, 아쉽게도 관객들은 항상 고탄력 피부를 자랑하는 짐 캐리만을 기억한다.

저우싱츠와 마찬가지로, 그에겐 알 수 없는 슬픔과 페이소스가 있다. 이것은 대부분 두꺼운 분장과 의상을 뒤덮고 있는 그의 캐릭터가 지닌 이중성에서 비롯된다. 엉덩이로 연기했던 ‘에이스 벤츄라’나 ‘덤 앤 더머’에서 알 수 있는 그의 운동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그 활발함과 속사포 말투와 과장된 표정 밑엔 누구보다도 상처 받기 쉬운 영혼이 있다. 그런 면에서 ‘마스크’는 그 제목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또한 ‘케이블 가이’는 짐 캐리라는 배우 혹은 캐릭터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영화다. 멍청한 코미디를 기대했던 관객들을 배신했다는 죄로 흥행 재난을 맞이했던 이 영화에서 짐 캐리는,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만 보고 자란 고독한 현대인이다. 케이블TV 설치원인 그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하지만 괴팍하게 형성된 그의 성격은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을 가져온다. ‘그린치’에서의 괴물 또한 그런 존재 아니었을까?

짐 캐리를 연구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편의 영화가 있다면 바로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이다. 두 개의 인격체가 혼합된 한 명의 인간. 진실만을 말하게 된 거짓말쟁이(‘라이어 라이어’)처럼 그는 자신의 모순과 싸운다. 그가 영화 속에서 종종 보이는 자기학대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린 ‘레모니 스니켓’에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울라프 백작을 마냥 미워할 수 없다. 저우싱츠와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는 ‘루저’인 짐 캐리. 하지만 그에겐 저우싱츠처럼 최후의 승리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한바탕 소란이 휘몰아친 후 정적 속에서 조용히 침묵에 빠지는 고독한 남자. 알고 보면 짐 캐리만큼 불쌍한 남자도 없는 셈이다.

‘소림축구’ 개봉을 맞아 한국을 찾았을 때, 왜 분명히 NG인 장면을 영화 속에 넣느냐는 기자회견장에서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장면들이 가장 진깡실한 장면들이다."

실수 속의 진실과 심각함 속의 웃음. 그의 영화는 허허실실의 코미디다. 저우싱츠와 짐 캐리의 공통점이라면, 그들은 영화 속에서 웃지 않는다. 하지만 그 ‘굳은 얼굴’엔 작은 차이가 있다. 저우싱츠의 시침 뚝 뗀 표정은 그 피부 밑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폭소를 감추고 있으며, 짐 캐리의 무표정은 그의 주특기인 ‘오버 연기、’의 일환이다.

‘쿵푸허슬’의 명장면 중 하나. 그는 빈민촌의 군중 앞에서 아무나 덤비라며 가장 약해 보이는 사람을 지적한다. 하지만 녀석들은 모두 근육질 몸짱들이며, 저우싱츠는 재빨리 다른 사람을 지적하지만 역시나 강해 보이는 놈이다. 이때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보면, 그 안에 ‘저우싱츠표 코미디’의 ‘엑기스’가 있다. 위험에 처해서도 심각한 표정짓기, 즉 자신의 내면과 다른 외면을 보여주기. 우디 앨런도 가끔씩 써먹는 이 ‘부조리 개그’는 마니아들을 환장하게 만드는 주요소다.

그의 시종일관 변하지 않는 표정은 패러디를 만날 때 더욱 빛난다. 혹시 '도성’에서 저우룬팎(周潤發)를 흉내내며 슬로모션으로 걷던 그를 기억하는가? 그는 레옹(‘홍콩 레옹’)에서 울트라맨(‘파괴지왕’)으로, 그리고 제임스 본드(‘007 북경특급’)로 변해간다. ‘홍콩 마스크’에선 짐 캐리부터 시작해 터미네이터, 슈퍼맨을 거쳐 급기야 ‘펄프픽션’의 트위스트 댄스까지 섭렵한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모방을 마치 자신이 원래 그 캐릭터였던 양, 아무 양심의 가책도 없는 것처럼 능청스럽게 해낸다.

하지만 우리가 저우싱츠를 진정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그의 무표정이 아니라 왠지 모르게 관객을 자극하는 연민의 눈동자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우상 리샤오륭(李小龍)에서 단 한가지를 배웠다. 밑바닥 생활의 고통을 견디고 악당(저우싱츠 영화에선 조금 어처구니없긴 하지만)을 물리치는 불굴의 정신. 그가 마니아들로부터 ‘동북아 루저들의 태양’이라는 어마어마한 칭호를 듣는 건 그런 이유다. 얻어 터지고, 길에 떨어진 더러운 음식을 먹고, 멸시 당해도 전혀 요동치 않는 ‘패배자들의 왕’. 하지만 최후의 순간엔 자신의 모든 분노를 모아 한번에 전세를 역전시키는 알 수 없는 힘의 소유자. 그가 바로 저우싱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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