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벽두부터 생뚱맞게 광화문 현판 교체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문화재청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재의 현판을 다른 글씨로 바꿔 달 계획이라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비롯된 이 논란은 어느새 우리사회의 진보와 보수세력간의 대리전 양상으로까지 비화해가고 있다.
현판 교체 반대론자들은 현판 교체가 박정희 폄하하기의 일환에서 비롯됐다는 동기의 불순성과 일탈된 역사도 역사의 한 부분이니 손 대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승자에 의한 역사파괴란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한자로 교체해선 안 된다는 ‘한글사랑론’까지 거론한다.
이에 반해 교체론자들은 어차피 현재의 현판도 조선조때의 원형이 아니라는 사실과 박정희와 경복궁과의 무관성을 내세우며 역사 되살리기 차원이라는 논리를 댄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주장들이다.
현재의 광화문은 6.25때 소실된 후 1968년 박 전 대통령에 의해 복원되면서 목제였던 원형과는 달리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게다가 위치마저 원래보다 더 남쪽으로 옮겨졌다. 즉 원형대로 복원되지 않은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미 1990년부터 2009년까지 20년 계획으로 경복궁을 복원중이다. 이번에 문제된 광화문 복 물론 이 계획에 들어있다. 정부는 이 계획에 따라 조선총독부 청사였던 중앙청을 철거했고 태원전 자리에 있던 30경비단도 이전했다. 그러나 정부의 복원사업이 끝나더라도 그 규모는 구한말 고종이 중건할 당시의 겨우 40%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의 와중에 소실된 수많은 전각들 중 과반수 이상이 아직 복원 청사진에도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현재의 청와대가 위치한 지역이다. 청와대 일대는 엄연히 구한말 때까지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후원이었지만 이 지역도 복원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다. 문화재청으로서는 청와대까지 헐어내%B고 경복궁을 원래 모습으로 완벽하게 복원할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번에 광화문 현판 교체 논란을 계기 삼아 경복궁의 완전복원을 위해 청와대를 다른 곳으로 이전했으면 어떨까 싶다.
‘참여정부’는 출범 때부터 제왕적 대통령제를 탈피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일환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의 많은 권력 중 상당부분을 총리에게 나눠주고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도 단순히 대통령이 지시하는 형식을 벗어나 격의없는 토론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시스템차원에서 권위주의적 통치행태를 혁파하는 작업도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해방이후 위압과 군림의 상징물처럼 국민들에게 인식돼온 청와대라는 건물을 경복궁에게 돌려주고 국민의 곁으로 다가설 수 있는 다른 장소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는 것도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이 아닐까? 이미 대통령 전용 별장인 청남대도 충북도에 돌려줬듯이 말이다.
일제는 조선왕조의 기세를 잠재우기위해 경복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후원에 총독관저를 짓고 근정전 앞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우는 등 경복궁을 철저히 파괴했다. 이왕지사 경복궁을 복원하려면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게 순리다. 이를 위해 정부는 청와대 이전문제를 이른 시일 내에 국민적 논의과정에 붙이길 바란다. 청와대를 옮기게 되면 현재의 건물은 철거해야 마땅하지만‘대통령 기념관’으로 재활용해도 될 것이다. 또 이전장소로는 조만간 미국으로부터 반환 받을 용산 미군기지 일대쯤이 좋을 것이다.
윤승용 정치부장 aufheb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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