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현진(52)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한국은행, 한국IBM 근무
한국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상무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대표이사 사장
국가기술혁신특별위원회 위원
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
■ 변재일(57)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행정고시 16회
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국제정치학 석사
정보통신부 정보화기획실장
정보통신부 차관
현 17대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정보기술(IT) 산업은 한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는 동력이다. 그러나 화려한 성장 신화의 이%C면에는 아직도 짚어보고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한국일보가 신년 기획 ‘업그레이드 IT 코리아’ 시리즈를 통해 제기한 한국 IT산업의 당면 과제를 재점검하고 경쟁력 강화 방안을 찾기 위해 전문가 2명의 대담을 마련했다.
테스트베드 시장 한계 극복 방안
변재일 의원= 한국은 앞선 초고속 인터넷과 이동통신 인프라 덕분에 글로벌 IT산업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휴대폰 단말기 분야는 그 덕을 보고 있지만 통신장비 분야에서는 우리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외국업체에 거의 내주고 말았다. 우리 기업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도록 정부와 산업계가 공동 노력해야 한다. 외국 기업이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거쳐가는 테스트베드라면 의미가 없다.
고현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 싱가폴, 홍콩 등과 비교하면 우리 내수 시장은 테스트베드로서 훌륭한 조건을 갖고 있다. 규모 면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고, 국민들의 기술 수용도도 높다. 이는 우리 IT기업들에게 천혜의 조건이다. 토종 기업들이 한국을 세계 IT산업의 선도 시장으로 발전시켜 내수시장에서 쌓은 경쟁력을 해외에서 발휘하는 전략을 적극 구사해야 한다.
변재일=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이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 수준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이는 테스트베드라는 여건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결과다. 인터넷 포털서비스를 보면,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바탕으로 우리가 앞서 개발한 서비스들이 많은데도 해외시장은 야후나 구글 등에 빼앗겼다.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초기에 유망 벤처기업들이 해외진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통신장비 시장만 봐도 국내시장에서 대기업과 경쟁하다 좌초한 경우가 많다. 정부가 이 같은 과정에서 전략적 지원을 해줬다면 좋았을 것이다.
고현진= 중소 IT기업들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계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대만의 경우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이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많다. 우리 IT벤처들도 해외의 한민족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시장으로 빨리 진출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
한국 IT산업의 고부가가치화 대책
변재일= 정부는 1990년대 초반부터 부품·소재 산업 육성에 진력하겠다고 외쳤지만 핵심 부품 국산화율은 오히려 더 낮아졌다. 숨가쁘게 국산화를 추진해도 신기술 및 추가 핵심 부품이 쏟아져 나오는 속도가 더 빨라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핵심 부품 뿐만 아니라 중저가 부품도 국산이 너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우리 IT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최첨단’ 경6쟁을 벌이느라 원천 기술에 투자할 여유가 없다. 이 때문에 해외 원천 기술과 핵심 부품에 계속 의존하게 된다. 원천 기술 개발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민 소득 2만 달러를 넘어 3만 달러 시대에도 살아 남으려면 국가적 차원의 원천 기술 연구개발이 계속돼야 한다.
고현진= 중저가 부품의 외국산 비중이 높아지는 까닭은 글로벌 경제의 영향이다. 예전에는 질이 좀 떨어져도 국산 부품을 썼다. 하지만 이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계 곳곳의 최고 업체로부터 부품을 조달하는 ‘글로벌 소싱’이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부품 업체들도 국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변재일= 우리 IT산업 매출액의 수익 유발 계수는 1점 만점에 0.5점 수준에 불과한데, 이는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도체, 휴대폰, 디지털가전 부문의 국산화율이 40~6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는 IT산업이 일으킨 경제적 효과의 절반이 외국에서 나타난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 중심으로 한국 IT산업이 움직이다 보니 나타난 %B기현상이다. 이들 대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글로벌 소싱을 할 수 밖에 없다. 중소 IT업체들도 가격 경쟁력을 맞추기 위해 중국처럼 인건비가 싼 곳으로 옮길 수 밖에 없다. 결국 산업의 부가가치 효과가 외국에서 더 많이 나타나므로 국민 경제 입장에서는 ‘저부가가치’가 된다.
고현진= 한국 경제에서 IT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수출의 35%, 국내총생산의 15%에 이른다. IT산업을 아무리 육성한다 해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IT산업 구조를 내부적으로 고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다. 고용 유발효과만 봐도 IT 제조%B업 분야는 상대적으로 고용유발 효과가 떨어진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1,000억 매출에 제조업은 50명, 통신산업은 150명이지만 소프트웨어는 620명이다. 미국의 경우 첨단 반도체와 함께 소프트웨어 기술이 앞서 있기 때문에 국내 총생산의 3%에 불과한 IT산업이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IT 인재 육성 방안
변재일= 우선 이공계 인력 양성 전략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양 보다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공계 정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58%인데, 미국은 17%에 불과하다. 소수 정예화 하고 있는 것이다. IT는 인재 산업이다. 많은 인력 보다 우수 인력에 대한 집중적인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고현진=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쓸만한 인재가 없다고 난리다. 기초기술을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데, 급하니까 응용기술만 가르쳐 내보내기 때문이다. IT는 기술 변화가 대단히 빠른 분야다. 기초가 없으면 새로운 기술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지 못한다.
변재일= 지금 얘기한 대로 학교가 기초 기반이 충실한 인력을 공급하면 기업이 자기 요구에 맞게 훈련시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흔히 학교가 산업체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인력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막상 기업측에 ‘졸업생들에게 필요한 기술이 뭐냐’고 물으면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공급 측면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문제다. 인력 공급 체제는 쉽게 바뀌기 힘들다.
고현진= 교과 과정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술 인력의 저변이 넓어져 산업 전체에 노하우가 축적되어야 하는데, 전문 기업이 부족한 한국 IT산업의 현실에서는 요원한 얘기다. 이런 측면에서 IT 대기업도 문어발식 사업 스타일을 버리고 전문화함으로써 중소기업과의 협력 모델을 구축, 경쟁력 높은 IT 전문기업들이 많이 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디지털 융합에 따른 갈등 해소
변재일= 디지털 융합(컨버전스)에도 3단계가 있다. 기기의 융합, 서비스의 융합, 사업자의 융합이다. 휴대폰으로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DMB) 방송을 보는 것은 기기(휴대폰+TV)와 서비스(이동통신+방송)의 융합이라고 볼 수 있다. 갈등이 표출되는 것은 사업자간의 융합 과정에서다. 세가지가 혼돈이 되지 않도록 정립해서 이해하지 못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고현진= IT 분야가 방송, 교육, 금융, 의료, 행정 등 모든 부문으로 확장해 가면서 이 같은 갈등이 생기는데, 컨버전스는 IT산업의 속성이다. 본래 IT기업은 컨버전스로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컨버전스 산업에 우리가 앞서 있다 보니 이 같은 갈등 경험도 앞서 치루고 있는 것이다.
변재일= 통신 인프라 산업에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융합 서비스를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신 사업자가 지속적으로 신규 사업에 투자하도록 만들려면 컨버전스를 통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통신의 영역을 계속 확대시켜줘야 한다. 통신 사업자들도 이제는 민간 기업이므로, 새로운 수익 모델이 없으면 통신 인프라의 지속적인 유지와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
정부의 역할
변재일=오늘날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정부가 산업정책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는 연구개발(R&D)이다. 컨버전스 과정에서 정보통신부가 문화관광부, 방송위원회 등과 갈등을 빚기도 하는데, 이 같은 경계 영역에서의 갈등은 부처간 조정력 강화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정력이 너무 강해서 부처의 자율적이고도 창의적인 권한을 침해하거나 약화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중복에 의한 예산 낭비, 행정 역량의 낭비는 어떤 형태로든 조정 되어야 한다.
고현진= 우리는 신기술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도 원천기술이 부족하다.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는 이런 투자를 할만한 성숙한 기업이 없다. 따라서 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때까지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정통부가 기존의 통신, 정보 산업 분야 뿐만 아니라 콘텐츠와 IT기기 분야에 이르기까지 IT 산업전 분야에 걸쳐 지원 역할을 맡아 줘야 할 것이다.
정리=정철환기자 plomat@hk.co.kr
사진=류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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