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올드미스 다이어리’에는 시트콤에 흔히 삽입되는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없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이 시트콤을 보면서 꼭 웃지 않아도 된다. 웃음소리를 삽입한다는 것은 이 부분만은 반드시 웃어줬으면 하는 제작진의 기대를 담은 것이지만, 그게 사라지면 등장인물들이 겪는 현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에서 웃을지, 혹은 이 시트콤을 보고 웃을지 울지 결정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몫이다.
‘시트콤’을 보며 웃지 않아도 된다니 이상한 말같지만, 실제로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누구나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같은 장면이라도 자신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중장년들에게 직장에서 애인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야근 1순위 대상에 오르는 미자(예지원)의 처지나,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남자에게는 무한한 승부욕을 불태우는 윤아(오윤아)의 이야기는 웃기거나 이해조차 되지 않는 해프닝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올드미스’들에게는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반대로 이 올드미스들에게는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며 치매를 걱정하는 영옥(김영옥)을 비롯한 또다른 ‘올드미스’들의 이야기가 과장된 해프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노년들은 이 이야기를 보면서 가슴 아파할지도 모른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시트콤에 흔히 등장하는 아이나 중년 캐릭터들을 배제한 채, 오직 30대와 60대 이상 두 계층의 이야기만을 매회 하나씩 대비시키며 끌어나간다. 두 계층의 인물들은 좀처럼 섞이지도 않고, 이 때문에 에피소드의 내용은 그들 사이에서, 그들만이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저걸로 과연 웃기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운 작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그것들을 하나씩 쌓아가면서 각각의 캐릭터에 현실적인 모습들을 부여하는 것이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에피소드를 끌고 가는 방법이다.
그래서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코미디적인 웃음보다는 드라마적인 공감을, 해프닝보다는 작은 소재들의 힘에 집중한다. 남자와 여자의 말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에 공감할 수 없다면, 왜 미자가 퇴근해서 방에 들어가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만사 귀찮다는 듯이 손이 아닌 다리를 쭉 펴서 방문을 닫는지 알 수 없다면 이 작품은 이상한 시트콤일 뿐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바로 그런 생각, 그런 행동을 하기 시작할 ‘때’가 된 사람들에게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요즘 가장 웃기는 시트콤, 혹은 드라마일 것이다.
‘웃음소리’에 대한 강박을 벗어나 시트콤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다양한 소재를 다루면서, 우리는 30대와 60대 여성의 소소한 일상을 ‘매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요즘 위기에 빠진 시트콤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기존 시트콤과 마찬가지로 소재 하나를 던지고, 그것을 나름대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어지지만, 그 소재를 현실의 공감대 안에서 끌어내자 여느 시트콤들보다 훨씬 디테일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결코 보여줄 수 없었던 소소한 일상을 통한 삶의 희로애락. 그것이야말로 요즘 시트콤의 웃음소리에 팔짱 끼고 냉소를 보내는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러운 웃음을 줄 수 있는 방법 아닐까.
대중문화평론가 len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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