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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 안에 있는 두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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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 안에 있는 두 편견

입력
2005.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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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학에 ‘편의(偏倚·bias)’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미지의 값을 예측, 또는 추정함에 있어서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도 이 것이 존재한다. 남의 것, 먼 것, 잘 모르는 것,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근거 없이 미화하는 반면 우리 것, 가까운 것, 익숙한 것, 이미 경험한 것에 대해선 지나치게 비판적이다.

구 소련과 중국, 동유럽 국가들은 사회주의 체제를 이미 오래 전에 포기하고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도입했다. 이게 현실일진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주의에 대한 미련은 분명 편의다. 경험해보지 않아 그리워하는 것인지, 북한처럼 독재와 결부된 사회주의 체제는 두 개의 마이너스를 곱하면 플러스가 되기 때문인지. 이웃 중에서도 대체로 먼 나라가 좋게 묘사된다. 일본이나 미국보다는 유럽이, 그 중에도 서유럽보다는 북유럽이, 한반도에서는 남보다 북이 미화되는 것 또한 편의가 아니고 무엇이랴.

반면 우리 과거사에 대해선 가혹할 정도로 부정적이다. 독재, 부정부패, 경제적 불평등의 역사로 그려진다. 책임질 사람들의 잘잘못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때문일 게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쓰레기 역사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 짧은 시간에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뤘고, 정치적 민주주의도 정착 발전시켜 왔다.

정치적 민주주의, 경제적 발전과 평등,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복지제도 등에서 우리는 선진국보다 한참 뒤쳐졌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발전을 먼저 경험했을 뿐, 과거사에 그늘진 곳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사회적 불평등에 항의하는 시민을 총칼로 진압한 역사도 있고, 재산이 있는 일부시민에게만 투표권을 주기도 했고, 유색인종을 잔인하게 짓밟기도 했다. 오늘날 그들의 좋은 모습만 보고 우리 스스로를 비하할 필요는 없다.

한국경제에 대한 해외%C의 긍정 평가가 외환위기 때 주춤한 적이 있었다. 일부 학자들은 이때 한국 발전모델 때리기에 나섰다. 양적 팽창, 경제적 불평등 심화, 대외종속 등 남미 비판에 사용된 어휘들이 르네상스를 맞았다.

98년 초 해외 학술모임에서 필자는 이들에게 말했다. "지금 우리가 어렵다고 해서 과거의 업적까지도 부정해선 안 된다. 선진국 경제와 비교해 현재 우리를 비판하지 말라. 비판을 하려면 1960년으로 돌아가라. 당시 한국과 비슷한 여건에 있던 나라를 들어 우리를 비판해 보라. 과연 빈곤의 바닥을 기는 무사안일의 역사를 택하겠는가, 아니면 ‘모험 없이는 영광도 없다’는 우리의7 롤러코스터식 여정을 택하겠는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 교수도 말했다. "물적, 인적자본 축적이 빠른 나라는 경제성장도 빠르다. 한국이 그렇다. 저축률이 세계 상위권에 속해 물적자본의 축적이 빨랐고, 교육열이 높아 인적자본 축적도 빨랐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기적이 아니다."

우리기업 제품들이 품질과 기술력으로 세계시장에서 호평 받고 있다. 교육열이 문제되나 부모의 교육투자는 인적 자본의 확충을 가속화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강대국 틈새에서도 당당하게 살아 남았음을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갖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힘없이 살아가는 민족이 얼마나 많은가. 언어와 문화마저 잃어버린 민족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 스스로에 대해 객관적이고 치우침없는 평가를 내리자.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과대, 과소평가의 극단을 오간다. 평가기준의 보편성을 상실하면 스스로가 피해자가 된다. 날마다 남을 부러워하고, 과거사를 바로잡고, 남의 집육? 기웃거리며, 날마다 새로운 실험을 해야 한다. 부정으로 치우친 자기평가는 미래로의 전진을 위한 동력과 자신감을 제공하지 못한다.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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