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씨가 장편소설 ‘비밀과 거짓말’을 냈다. 2년 반 동안 매달려 쓰고 퇴고했다는 작품이다. 1995년 등단 이래 4권의 장편을 포함해 7권의 책을 낸 그간의 쾌조의 글쓰기 행보에 견줘 이 여덟번째 책에 들인 공력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것을 작가는 ‘한 고비를 넘기 위한 수고’라고 말한다.
소설의 이야기는 중층적이다. 시골 소도시의 영준 영우 형제가 아버지의 배타적이고 비타협적인 훈육 속에서 성장하며 겪는, 정체성의 혼돈 등 다단한 생의 이야기?2가 큰 줄기를 이룬다. 거기에 이들 형제가 속한 집안과 이웃 집안이 마을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벌이는 갈등의 대물림이 얹히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삶이 여러 감춰진 비밀 혹은 거짓말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섞여 든다. 집안 3대의 이야기가 갈마들고, 영화감독이 된 영준의 영화 시놉시스까지 중간중간 삽입된다. 이 복잡한 이야기 갈래를 작가는 특유의 ‘냉소적 이성의 문체’와 경쾌한 리듬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가지런하게 땋아가고 있다.
주무대인 시골 소도시는 단어의 뉘앙스처럼 폐쇄적이고 정체된 공간이다. 거기에 70년대라는, 우리사회가 경험한 가장 파행적응隔? 폭력적인 역동성의 시간이 밀어닥친다. 아버지는 관급공사 수주와 권력의 외줄타기에 삶을 건 자수성가한 건설업자. 그에게는 집안을 일으켜 세워 ‘가문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는 소명이 주어져 있다. 그 소명의 대리자인 영준 형제는 그 간단치 않은 시대와 세대와 가계의 중력장에 놓인 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부대끼고 적응하며 성장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결코 낯설거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지 모르나 은희경씨의 문장으로 만나는 시간의 역사는 개별적인 경험의 기억들을 압도할 만큼 새롭고 진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따라서, 두 형제나 그들의 가계가 아니%F라 그들이 지나쳐 온 장구한 시간이며, 그 시간은 지금 우리의 시간에 닿아있고 녹아있는 삶의 시간이다. 이 소설이 성장소설의 범주를 넘어, 더 넓은 세계를 지향하는 듯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서 은희경씨는 "그동안 할말은 어지간히 한 것 같다. 새로운 이야기로 들어가는 경계에 섰지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작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적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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