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도하는 중동 민주주의의 전초기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종파·민족간 분열이 피를 부르는 또다른 전장이 될 것인가. 30일 거행되는 이라크 총선은 향후 이라크 민주화 정치 일정의 성패를 가늠하는 첫 단추이다. 또한 500여년 만에 수니파에서 시아파로 이라크의 지배세력이 교체되는 가히 혁명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1당이 확실한 시아파의 통일이라크연합(UIA)이 어떤 성격의 정부를 구성할 지가 주목된다. 수니파 사이에선 친 이란 시아파 종교단체가 많은 UIA의 성격을 들어 신정체제의 첫걸음을 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UIA 인사들은 수니파를 내각에 참여시키고 이란과 일정한 거리를 둘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징적 대통령은 수니파, 실세 총리는 시아파, 외교 국방장관은 쿠르드족이 분점한 동거 내각이 출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UIA의 득표율도 정권 구성의 변수다. UIA는 40~45% 정도 득표를 예상하지만 과반수를 넘길 경우 상황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야드 알라위 임시정부 총리 등 시아파 친미 인사들의 입지가 크게 축소될 수 있기때문이다.
시아파 정권 등장으로 수니파가 대부분의 저항세력의 공세는 한층 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등 알 카에다 연계 수니파 테러리스트들이 ‘종파전’을 본격화할 가능성도 높다.
타임은 "미국은 선거에 의한 정부 출범이 저항을 약화시켜 철군의 길을 닦을 것으로 봤지만 되레 폭력을 확산시키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26일 상원 국방위 비공개 보고에서 길게는 4월까지 혼란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이 더 곤혹스러운 점은 이라크 방위군의 전력이 형편 없는 상황에서 총선을 계기로 연합군 내 철군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 있는 점이다. 우선 구 소련 출신 연합군을 이끈 우크라이나가 주둔군 전원을 상반기 중 철수하기로 했고, 동유럽 국가를 지휘한 폴란드도 2월말까지 병력의 3분의 1을 철수하기로 했다.
부시 대통령은 29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새 정부가 철군을 요구하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최소한 12만명의 미군을 적어도 향후 2년간 유지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 각 정파와 주요 인물
이라크 총선에는 종파와 민족별로 구성된 9개 연합을 비롯, 약 100여 개의 정당과 개인이 참가한다.
이번 선거의 최대 승리자는 국민의 60%를 차지하는 시아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가장 유력한 제1당 후보는 통일이라크연합(UIA)이 꼽히고 있다. UIA는 시아파 양대 정당인 이슬람 혁명최고평의회(SCIRI)와 이슬람 다와당 등 20개 정당이 뭉친 조직으로 시아파 최고 성직자 아야툴라 알 시스타니의 지원을 받고 있다. 사담 후세인과 오랫동안 대립해 온 압델 아지즈 알 하킴 SCIRI 의장이 228명의 공천자 명단 중 1순위에 올라 있다. 시아파 무슬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어 총선 후 구성될 이라크 과도정부의 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도 UIA는 이슬람 다와당 대표인 이브라힘 자파리 부통령과 아흐메?%E? 찰라비 이라크국민회의(INC) 대표 등을 주요 후보로 내세웠다. 득표율은 40~45%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야드 알라위(시아파) 현 총리는 국민화합운동(INA)과 수니파 일부 세력 등 세속주의 5개 정당이 연합한 ‘이라크인(Iraqi)’의 간판을 달고 이번 선거에 참여한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의 희생을 유발한 미군의 군사작전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등 지지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
쿠르드족은 이번 총선 후 중앙정치 무대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등장할 전망이다. 쿠르드애국동맹(PUK)과 쿠르드민주당(KDP) 등 9개 정당이 연합한 쿠르드연합은 20~25%의 득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자랄 탈라바니 PUK 의장과 마수드 바르자니 부통령 겸 KDP 대표 등이 주요 공천자이다.이라크 인구의 20% 정도인 수니파는 최대정당인 이라크이슬람당 등 대부분의 단체들이 선거 보이콧을 선언한 가운데 가지 야웨르 현 대통령과 아드난 파차치 등이 각각 단독 정당을 꾸려 참가했다.
이밖에 사회주의 계열인 인민동맹(PU)과 아랍 민족주의를 주팅▤求? 아랍민주전선(ADF) 등도 입후보자를 냈지만, 의석 확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 관전 포인트 "투표율 50%가 마지노선"
이라크 총선의 최대 관심사는 시아파 압승이라는 예정된 시나리오가 아니라 극도의 치안부재 상황 속에서 과연 선거가 순조롭게 치러질 수 있을 것인가에 모아진다. 저항세력이 "투표자의 피로 거리를 물들이겠다"고 공언한 후 투표소 습격, 후보자 암살 등 선거방해 공작이 속출하고 있다. 선거 당일엔 유권자를 가장한 폭탄 테러공격 등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포에 휩싸인 바그다드에선 선%거 현수막, 유세 등 선거 분위기는 커녕 테러 우려로 투표소 위치 마저 투표개시 직전까지 ‘보안사항’이다. 신변위협을 느끼는 유권자들은 지정된 투표소가 아닌 곳에서도 투표할 수 있지만 5,220개 투표소 어느 곳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국제선거감시인단은 이라크엔 들어오지도 못한 채 요르단에서 ‘원격 감시’를 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투표결과 보다도 투표율이 주목된다. 투표율은 이번 선거의 합법성을 가늠하는 핵심 잣대이다. 미국은 투표율이 70%를 넘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이라크 당국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서도 응답자의 72.4%가 투표의사를 피력했다. 특히 ?4磁5? 자치지역은 97%, 시아파 지역은 96%로 매우 높았다.
하지만 무장세력의 총공세로 투표율이 예상치를 크게 밑돌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임시정부가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50%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대체로 저항세력의 ‘투표 보복’ 심리전이 임시정부의 투표홍보전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까지 "자유사회를 두려워하는 테러범들을 무시하고 투표소에 나오라"고 독려하는 사정이 있는 셈이다.
특히 이번 선거를 사실상 보이콧한 ‘수니 삼각지대’의 선거 환경이 극도로 험악하다. 미군 지휘관들도 전체 18개주 가운데 4분의 1이 %거주하는 수니 4개주가 투표를 실시하기에는 불안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AP 통신은 수니파가 30% 남짓의 투표율을 기록하고 5~6%의 득표율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사실상 수니파의 정치적 몰락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수니파가 영향력 회복을 위해 ‘3개주가 반대하면 무효화한다’는 임시헌법 규정 등을 이용, 총선 후 구성되는 제헌의회의 헌법 제정을 가로막으려 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반면, 치안불안에 따른 낮은 투표율과 수니파의 선거불참이 100여년 동안 아랍족의 박해를 받아가며 권력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쿠르드족에겐 권토중래의 기회가 될 듯하?%D?.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쿠르드는 이번에 전체 275석의 25%에 해당하는 65~70석을 얻어 제2의 정치세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이는 전체 유권자 1,400만(15~20%)의 실제 인구비율보다도 많은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국을 단일선거구로 하는 비례대표제로 실시되는 이번 선거는 30일 오전 7시(한국시각 30일 오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행?%0된다. 공식선거결과는 1주일~10일 이후 발표될 예정이다.
이동준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