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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문명의 자기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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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문명의 자기모순

입력
2005.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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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는 동요가 있다. 짓궂은 사람은 이를 "부부가 밤잠을 설치다 보니 애가 많다"는 얘기로 바꾼다. 가난한 흥부 부부가 금실이 좋아 해마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더해 가난한 집의 자복(子福)을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흔히 거론되는 ‘크리스마스 베이비’ 이야기는 영국항공 여승무원의 예가 압권이다. 1996년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근무자에게 남편·애인을 동행하게 한 결과 약 6,000명의 여승무원 중 591명이 한꺼번에 임신했다. 1965년 11월의 뉴욕 대정전 약 270일 후 %뉴욕의 산부인과 병원이 산모로 넘쳤다.

■ 영국 항공 이나 뉴욕 대정전의 경우는 임신 여성에 대한 과학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일반적 임신 확률을 얼마나 넘어선 것인지를 알긴 어렵다. 그러나 독일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에 나간 남편·애인이 배치 전환을 틈타 하루 이틀 고향에 다녀간 뒤 임신한 838명의 여성에 대한 조사기록이 있다. 배란기인 여성의 임신은 당연하지만 배란기를 많이 앞둔 여성, 심지어 배란이 끝났지만 아직 생리를 하지 않은 ‘안전기’에 있던 여성의 임신이 의외로 많았다.

■ 동물세계에서 교미가 배란을 유발하는 사례는 많다. 고양이나 %B사자, 토끼나 밍크 등은 교미가 배란을 끌어낸다. 특히 밍크는 수컷이 교미를 하면서 암컷의 목을 물어 피가 흐르도록 해야만 배란을 한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개나 소 말 돼지 등의 배란이 교미로 촉진되지 않듯 인간 여성의 배란도 기본적으로 성 관계와 무관하다. 그러나 인간도 특수한 상황에서는 배란 유발이 가능하다면 위의 독일 사례나 진주만 폭격 약 270일 후 미국의 ‘미니 베이비붐’ 등을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다.

■ 일상적 부부관계 때와는 달리 오랜만에 남편이 찾아온 커다란 기쁨, 전쟁이나 정전 때의 공포와 불안 등 특수한 심리상태가 배란을 부른다. 이는 되도%록 다양한 유전자 조합을 남겨 자신의 유전자가 존속할 확률을 높이려는 ‘바람’의 유전자적 목적과 닿아 있다. 특수상황에서 배란이 없다면 ‘바람’의 목적은 이룰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임신 없는 성 관계’에 대한 인간의 욕구도 유전자적 목적에 충실하려는 진화의 결과다. 다만 그것이 심각한 저출산으로 향하며 도리어 유전자 존속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 진화는 물론 문명의 자기모순을 보게 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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