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모(32·여)씨는 겨울 들어 고질병인 치질이 악화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씨는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수술 후 통증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하다는 얘기 때문에 병원 가기를 망설이고 있다. 실제로 항문질환 전문 병원인 대항병원이 치질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26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치질을 자각하고 병원에 오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렸다는 사람이 42.7%나 됐다. 여전히 치질 치료를 미루는 환자들이 많다는 얘기인데, 여기에는 치질에 대한 잘못 알려진 상식 탓이 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 가운데 출산 다음으로 많은 것이 치질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치질은 전국민의 25%, 성인 여성의 40~50%가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한 현대 병이다.
◆ 치질 대부분이 치핵 = 치질은 항문 안팎의 질환을 통칭하는 것으로 항문 밖으로 근육이나 혈관덩어리가 빠져 나오는 치핵, 항문이 찢어져 생기는 치열, 항문 주위가 자꾸 곪아 구멍이 생기면서 고름이나 대변이 밖으로 새는 치루 등이 있는데, 항문 질환의 70% 정도가 치핵이기 때문에 흔히 치핵을 치질이라고 부른다. 항문에 피가 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치핵 때문이다.
치핵은 피가 항문 근처로 몰려 망사 모양으로 부풀어올라 약한 혈관벽을 밀어 내거나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 대항병원 치질클리닉 이재범 과장은 "혈액은 온도가 낮아지면 농도가 짙어지고 온도가 높아지면 묽어지며, 근육은 외부 온도가 낮으면 수축되는데 이것이 치핵의 원인"이라며 "여름철보다 겨울철에 치질이 악화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수축된 피부와 근육이 모세혈관을 압박하고, 혈액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찬 바닥에 앉거나 장시간 회의에 참석하면 치핵이 빠져 나와 묵직한 통증과 함께 출혈이 생긴다.
치질은 술을 먹으면 악화하는데 이는 간에서 알코올을 해독하는 동안 치핵의 모세혈관과 간과의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치핵 내 혈압이 높아지고 혈관이 확장돼 출혈이 생기기 때문이다.
◆ 치질 수술 반드시 할 필요 없어 = 대장항문 전문의들은 쉽게 수술을 결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변을 볼 때마다 심하게 탈항(근육이나 혈관덩어리가 항문 밖으로 비어져 나오는 현상)되거나 염증으로 인해 통증이 심할 때, 다른 방법으로 치료를 했지만 효과가 없을 때만 수술이 필요하다.
치핵은 증상에 따라 크게 4단계로 나눈다. 다른 증세 없이 피만 나면 1기, 탈항이 있지만 변을 본 뒤 바로 원래대로 돌아가면 2기, 탈항 부위를 손으로 집어넣어야 한다면 3기, 손으로 집어넣어도 들어가지 않는다면 4기다.
1기와 2기, 3기 초기의 경우에는 수술보다는 생활습관을 개선하면서 치료만 하는 비수술법이 좋다. 이 경우에는 대부분 당일 퇴원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시술되는 수술법은 고무밴드 결찰술. 고무 밴드로 치핵 덩어리를 단단히 묶어 피가 통하지 않도록 하고 조직을 죽이는 수술법으로, 완치율은 8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적외선이나 주사를 이용해 치액을 얼려 죽이는 방법도 있지만 이런 수술법은 시술이 간편한 반면 효과는 고무밴드 결찰술보다 떨어진다.
◆ 수술 후 재발은 거의 안 해 = 치질 수술만큼 고통스러운 수술도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잘못 알려진 것이다. 환자 중에는 수술을 받자마자 바로 퇴원을 고집할 정도로 통증이 없는 경우도 많다. 통계에 따르면 입원 기간 중 진통제 주사를 한 번도 맞지 않는 경우가 30%, 1회가 40%, 2회가 20%, 3회가 10% 정도이며, 보통 수술 후 1주일 정도 지나면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다.
치핵은 항문외과 전문의가 수술하면 거의 재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치루의 이전 단계인 항문직장농양은 고름만 제거하면 십중팔구 재발하므로 염증이 생긴 항문샘까지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또 치열은 수술 후 변비를 잘 치료해야 재발하지 않는다.
간혹 치질이 계속되면 암으로 악화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치질을 수술하기 전에 먼저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는데, 이때 환자 300명당 1명 정도에게 대장이나 직장에 암이 발견되고 치질 수술 중에 암이 발견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이다. 단, 치루는 오래 방치할 경우 치루암으로 발전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 수술 후 경과는 생활습관 개선이 관건 = 치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항문 청결이 중요하다.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김희철 교수는 "치질 기미가 있는 것 같으면 가급적 아침에 대변을 보는 습관을 들이고 너무 오랫동안 앉은 자세를 취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번에 10분 이상 변기 위에 앉아 있지 않아야 한다. 항문 주위에 피가 오랫동안 몰리면 증세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또 하루 두 차례 정도 따뜻한 물(40~45도)로 3~5분 정도 좌욕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좌욕은 항문을 자극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해 울혈(피가 몰림)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좌욕법은 탕 속에 들어가 있거나 세수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엉덩이를 푹 담그는 방법, 비데나 샤워기로 항문 주위에 따뜻한 물을 계속 뿌리는 법 등이 있다.
맵고 짠 음식을 피하고 현미와 잡곡, 채소, 해조류 등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섭취해 변비를 없애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재 권장되고 있는 식이섬유 섭취량은 하루 20~35g. 그러나 갑자기 섭취량을 늘리면 가스가 찰 수 있으므로 천천히 늘려가는 것이 좋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치질 예방 10가지 수칙>치질>
1. 매일 1회 이상 화장실에 간다.
2. 화장실에는 10분 이상 머물지 않는다.
3. 화장실에 갈 때에는 책이나 신문을 가져가지 않는다.
4. 배변 후에는 항문을 물로 씻거나 비데를 한다.
5. 물을 하루 2ℓ 이상 마신다.
6. 채소 등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먹는다.
7. 매일 30분 이상 산책이나 조깅을 한다.
8. 짜고 매운 음식, 술, 담배를 피한다.
9. 하루 한 차례 샤워를 한다.
10. 지나치게 무거운 것을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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