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교실이 진화론 교육 문제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 동안 정교분리 헌법 원칙 탓에 교과 과정 진입에 번번이 쓴 잔을 마셨던 창조론 진영이 조지 W 부시 재집권 이후 보수화 바람을 타고 부쩍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론 진영은 우선 종교색을 탈색한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이란 새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법원의 위헌 판결을 피하기 위해 지금까지 고집하던 ‘신의 창조’를 ‘초월적 지적 존재’로 대치하는 등 그리스도교 관련 언급을 과감하게 포기한 것이다. 또 진화론 교육을 반대하지 않고 다만 지적설계론이나 다른 생명기원설과 균형 있게 가르치라고 주장한다.
창조론 진영은 또한 적극 이슈화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주 펜실베이니아주의 시골마을 도버의 교육위원회는 학교 생물수업 시간에 갑작스러운 성명을 낭독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이론일 뿐 사실이라고 할 수 없고, 지적설계론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다른 관점의 설명"이라는 내용이다. 지난해 말 과학 교사들에게 수업 중 성명 내용을 학생들에게 알리라고 결정했지만 따르는 교사가 없자 13일 지적설계론을 교과 과정에 편입한 뒤 직접 학교로 나선 것이다.
조지아주 콥카운티에선 생물 교과서에 같은 내용의 스티커를 붙이도록 했다. 법원의 삭제 명령을 받았지만 카운티 교육위는 바로 항소했다. 캔사스와 위스콘신주 등도 지적설계론 문제로 시끄럽다.
교회가 논쟁의 뒷전으로 물러선 것도 이전과 다르다. 대신 디스커버리재단 과학문화센터 등 보수 성향 싱크탱크가 총대를 멧다. 디스커버리재단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의 보수파 조지 길더가 세웠으며 초보수주의 아먼슨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좋은 교육은 학생들이 여러 이론을 개방된 마음으로 비판하고 토론하는 것"이라며 ‘논쟁을 가르치자’(teach the controversy)란 구호를 외치고 있다. 60년대 이후 진보주의자들이 성교육 진화론 등을 교과에 편입시키며 내세운 명분을 고스란히 빌려 순수 교육 목적으로 지적설계론 교육을 주장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계는 바싹 긴장하는 분위기다. 안 그래도 지난해 말 CBS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3분의 1이 진화론을 믿지 않고, 3분의 2는 창조론과 진화론을 동등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답하는 등 미국 사회의 종교 보수화 움직임이 뚜렷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도 23일자 사설에서 "진화론이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다면 지적설계론은 이론도 아니며, 이를 과학적 대안으로 가르쳐선 안 된다"고 주장했고, 타임 등 다른 언론들도 지적설계론이 ‘진화론에 대한 종교의 은밀한 공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등 논쟁이 벌어지는 지역 언론에는 ‘사우디 스타일의 종교 도그마를 막자’ ‘과학자가 될 것이냐 아야툴라(이슬람 시아파 성직자)가 될 것이냐’는 등 격문 같은 과학자들의 기고가 실리고 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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