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문화기획 시리즈 ‘강정의 나쁜 취향- 문화, 낯설게 보기’를 연재합니다. 젊은 시인 강정(34)씨가 매주 화요일 맡아 쓸 시리즈는 문화가 생산·유통·소비되는 지점의 안과 바깥에서 그 주체와 환경, 어제와 오늘을 두루 보고, 내일의 문화를 한 발 앞서 감지하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 작업은 주류와 다수의 관점에 매몰되지도, 그것을 배제하지도 않는 거리에서 출발합니다. 그 과정은 대상으로서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스며 새로운 하나로 융화하거나, 때로는 그것과 격렬히 부딪치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감각,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경험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2000년 이후 전인권은 줄곧 선글라스를 쓰고 다닌다. 그는 ‘실체를 그대로 보는 게 재미없다. 선그라스를 통과해 사물을 보면 평범한 것들도 다 멋있어 보인다’고 말한다. 전인권은 요즘 방송 출연이 잦다. 꼭 노래하는 프로가 아니더라도 얘기하는 프로에 흥미를 느낀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나간 프로를 모두 다 성공시켰다며 자랑 조로 얘기한다. 게다가 조만간 절친한 사이인 김정환 시인의 소개로 영화에도 출연한다고 한다. 황신혜와 사랑에 빠지는 역할이라고 하는데, 상상이 잘 되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전인권의 노래를 듣지 않다가 2003년 가을 무렵, 세 번째 솔로앨범 ‘Destiny’를 들으며 마음이 신산해진 기억이 있다. 사진가 김중만이 찍은 재킷 사진에 이끌려 충동구매 했던 CD였다. 사막에서 기타를 들고 갈기머리를 날리며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내가 지상에서 알고 있는 가장 별난 멋스러움 중 하나였다.
김중만의 사진집인지, 전인권의 앨범인지(따지고 보면 둘 다 맞다), 약간 헷갈리는 재킷을 열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황량한 바람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전인권 특유의 어눌한 보이스를 듣는 순간 나는 불현듯 사막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김민기의 ‘봉우리’로 포문을 여는 그 앨범의 뿌리는 여지없는 사막과 바람의 정서였다. 나는 오십이 넘은 나이에 이토록 스산한 정조를 전면岵막?폭발케 하는 에너지에 벌벌 떨다시피 했다. 그건 죽음 직전의 사자후거나 죽음 이후에 맞이한 천지개벽의 소요에 가까웠다.
그 가을이 지난 후, 난 그 CD를 또 다른 심리적 병증으로 허우적대던 후배에게 떠넘기듯 줘버리고 말았다. 소위 나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라는 것에 콧방귀를 뀌던 무렵이었으니, 타인의 에너지에 휩쓸리느니 내 콧속의 기압을 최대한 부풀리는데 몰두하자는 심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나의 콧바람은 눈 앞에 놓인 촛불의 심지조차 유혹 못할 정도로 싱거울 따름이다.
그런 와중에 전인권을 만났다. 지난 연말 발매된 솔로 4집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을 설렁설렁 듣기는 했지만, 약간 실망한 상태였다.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임을 전제하고 말하자면, 이번 앨범엔 심장의 풀무까지 단번에 자극하는 거친 육질의 생동감이 모자란 듯 여겨졌다. 물론, 전작(前作)에서 받은 강렬한 느낌이 선입견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런 이유로 전인권을 2년 전보다 다소 사그라진 정열을 줄창 쓰고 다니는 선글라스 안쪽에 감춘 사람이라고 멋대로 판단했다.
하지만 공연을 서너 시간 앞둔 일요일 오후 대학로 라이브극장 대기실에서 만난 전인권은 내가 섣불리 머리 속에 그렸던 사람과 매우 흡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실물감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냥 편하게 얘기해요. 오프 더 레코드 할 부분이 있으면 내가 미리 알려 줄 테니까." 마주 앉자마자 어색한 분위기를 급반전시키며 그가 입을 열었다. 대뜸 대마초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요즘도 많이 하냐는 둥의, ‘골 빈’ 질문이었다. 그러자 전인권은 지금은 대마초를 하지 않는다고 운을 뗀 다음, 예의 엉뚱한 듯하면서도 핵심만 단박에 찌르는 얘기를 했다.
"대마초를 피우고 거울을 보면 나의 지저분한 모습, 나쁜 모습, 못난 모습들이 명징하게 보여요. 내가 참 잘못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어, 그러니까 참 내가 안 멋있구나, 멋있게 살려면 이러저러한 모습들을 버려야 하겠구나, 하는 것들이 너무 또렷하게 보이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사는 게 더 멋있어졌어요. 내가 지금 참 멋있지만, 예전에 안 멋있는 부분도 참 많았었거든요. 그런데 대마초 덕분에 더 멋있고 도덕성도 더 뛰어난 인간이 될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합법화하자는 거예요. 그걸 마음껏 할 수 있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세상이 더 좋아질 것 같으니까요."
그에 의하면 대마초를 하고 나면 음악이 훨씬 더 잘 들리면서 집중력이 생긴다고 한다.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는 깡패가 싸움질 잘하기 위해서 쓴다면 바로 효과를 볼 수도 있는 만큼 합법화에 따르는 제도적 장치 또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언뜻 금연이 건강에 좋다는 것 마냥 판에 박힌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일상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왜곡된 편견과 신비감만 걸러내고 듣는다면 덧붙일 것도 뺄 것도 없는 명징한 대답이다. 결국,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다양한 기회를 개방하자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그가 요즘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타이틀로 공연중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는 요즘 사람들이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세상을 노래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언제나 영화처럼’이라는 그의 옛날 노래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앨범 ‘Destiny’가 전인권 개인의 아픔과 좌절을 ‘징허게’ 불러 젖힌 것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보다 따뜻하고 경쾌한 정조가 지배적이다. 2년 전 듣는 이의 심장을 비틀어 쥐었던 절규가 둥글게 굽어진 반면, 신산한 고독의 토굴을 빠져 나와 싱싱한 햇볕에 알몸을 드러낸 듯한 여유와 익살마저 느껴진다. 사막에서 바람과 독대하던 그가 저잣거리로 돌아와 사랑과 평화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늘 품고 사는 화두가 ‘여럿이 함께’란다. 80년대 운동권의 대동단결 문구 같은 모토를 청년시절부터 줄곧 가슴에 품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발원지는 미국의 히피즘이다. 이건 그의 정신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앨범이 들국화 해체 후, 단짝이었던 고(故)허성욱과 같이 낸 ‘추억 들국화 - 머리에 꽃을’(1987년)이었다는 사실이 방증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는 여전히 히피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히피가 창궐하던 1960~70년대나 지금이나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쟁과 기아는 여전하고, 개인의 고독과 소외는 더욱 첨예해졌다. 그러니 그의 청년시절 감수성을 형성케 해줬던 히피즘을 누차 반복한다고 해서 격세지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 그건 복고도 회귀도 수구도 추억도 아닌, 지금 현재의 맹렬한 감성이자, 가수 전인권이 보지하고 있는 치열한 정치의식의 기조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존 레논의 ‘Imagine’과 영국 밴드 프리(Free)의 ‘Wishing Well’ 신중현의 ‘미인’ 등 유독 리메이크가 많은 이번 앨범에 대해 그는 스스로 후한 점수를 매긴다. "난 판을 내고 나서 스스로에게 주는 점수가 짠 편이예요. 50점 정도 주면 많이 주는데, 이번 앨범은 장난 아니에요. 그래서 감히 80점까지 주고 있어요. 지금은 판 낸 지 한 달하고 12일밖에 안 지나서 잘은 모르지만, 앞으로 반응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추측건대, 노래의 형식이야 어떻든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숙변 뽑듯 자연스럽게 표출했다는 자족감 때문일 듯싶다. 그는 어쩌면 세상의 모든 노래를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자기 것으로 승화하는 경지를 이미 깨우친 건지도 모른다. 그랬을 때, 가수는 단순한 유흥의 제공자를 넘어 자신의 소리가 진동하는 반경 안에서 더할 나위없이 강한 에너지를 발산해내는 원심의 중앙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그를 보며 자메이카의 밥 말리나 칠레의 빅토르 하라, 구 소련의 빅토르 최 등을 떠올렸다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런 파장은 의식화된 정치적 비전 이전에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본능적 에너지로 파악되어야 옳다. 노래란 자고로 울고 웃고 춤추면서 마음의 허물들을 벗겨내는 거두절미의 미학적 양식 아니겠는가.
전인권은 노래만큼이나 화법 또한 거두절미다. 일설로 풀기에는 복잡하고도 난감한 내용들을 그는 한마디의 무심한 어투로 단번에 퍼내는데 일가견이 있다. 그건 자신의 마음을 송두리째 다 드러냄으로써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보위하는 역설적인 에너지에 다름 아니다. 병을 병이라 일컬음으로써 병을 쫓아내는 노자의 화법이랄까. 앨범 타이틀이 왜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랑 얘기를 몇 번 해본 사람들은 전부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어요. 자만이 아니라, 사실이 그런 거예요. 난 항상 내가 옳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내가 옳다는 확신이 서면 누구든 두렵지 않고, 누구든 사랑할 수 있어요."
이런 호언장담이 전혀 허풍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요즘 들어 방송출연이 잦은 그는 독특한 화술과 자기표현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법한 그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들을 기분좋게 무너뜨리고 있다. 그러면서 세상과 삶에 대한 그만의 직설들을 가감 없이 내뱉는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자신과 ‘안 싸우는 사람들’로 변화시킨다. 그러니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이 되면 세상과 ‘안’ 싸우거나 ‘잘’ 싸우는 사람이 될 공산이 크다. 적어도 전인권이 이렇게 말하는 것에 공감한다면 말이다.
"가난한 걸 즐기고 살면 행복해 질 수 있어요. 500원을 가지고 있어도 지금 당장의 상황에 충실하면서 허깨비들이랑 어울리지 않고 자기 마음만 다지면 세상은 자기 편이 되거든요. 자기 것을 가지고, 자기가 마음을 잡으면 돈도 들어 올 거고. 이거 확실한 얘기예요. 난 살면서 마음을 딱 잡고 있으면 서서히 몸이 뜨거워지면서 돈이 들어온다는 걸 경험으로 알아요. 그리고 그게 순리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세상한테 불만을 품을 것 없어요. 그저 자기자신에 충실하면 돼요. 내 말 틀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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