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만만찮은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은하수 히치하이커’) 시리즈 완결판이 출간됐다.
얘기의 발단은 이렇다. 런던에서 불안과 초조의 나날을 보내다 한적한 농장지대로 이주한 아서 덴트라는 원숭이의 후손이 있다(은하수 외계인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인이란 그저 원숭이의 후손일 뿐이다). 지방의회의 우회로 건설계획으로 인해 아서는 하루아침에 집 없는 원숭이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다. 우리의 시민 몽키는 불도저를 앞세운 몽키스 관료집단에 맞서 그저 벌러덩 드러눕는 방식으로 대처한다. 과연 원숭이의 후손답다.
그러나 아서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바로 베텔게우스 행성에서 온 외계인 친구 포드 프리펙트가 있었던 것. 지구에서 생활한 지 15년 만에 자신이 외계인임을 커밍아웃한 포드는 사실 우주적인 베스트셀러인 ‘은하수 히치하이커’의 이동 조사원이었다. 말하자면 외계인 샐러리맨인 셈이다.
자, 얘기는 이제부터다. 아서는 포드에게서 충격적인 묵시록을 접하게 된다. 은하계의 우회로 건설계획에 따라 지구가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외계인의 공언은 불과 20여 분만에 현실로 닥치고 만다. 그리고 아서는 포드와 함께 은하계의 히치하이커가 되어 히피처럼 떠돌게 된다.
얘기는 이제 우주와 지구, 선사시대와 5조7,600억 년 후의 미래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점입가경의 버라이어티쇼로 이어진다. 더글러스 애덤스는 과학적 논리나 스토리의 개연성 따위를 철저하게 무시해 버리고, 야단법석의 난장(亂場)을 늘어놓는다. 백과사전적인 요소가 툭툭 끼어드는가 하면, 잡다한 에피소드가 파편적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우주를 무대로 펼치는 시시껄렁한 농담과 익살, 수다의 카니발이 폭죽놀이처럼 작열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지구는 어느 외계 종족이 설계한 거대한 컴퓨터이고, 지구를 지배하는 동물은 쥐였다가 도마뱀이 되기도 하며, ‘깊은 생각’이라 불리는 컴퓨터가 750만년 동안 연산해낸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42’라는 것, 신이 피조물에게 남긴 최후의 메시지란 게 고작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문장 하나라는 것….
그런데 이런 황당무계하고 허무맹랑한 상황들과 괴기스러운 등장인물들의 행태가 어딘지 모르게 낯익다. 치졸하고 한심해 보이는 외계인들의 면면조차 어떠어떠한 지구인을 닮아 있다.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한 일들이 전 우주를 무대로 새롭게 펼쳐지는 형국이랄까.
애덤스는 "세상에 좀 불만이 있어서" ‘은하수 히치하이커’를 구상했다고 말한다.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한 환멸 때문에 지구멸망을 소재로 한 작품을 블랙유머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은하수 히치하이커’가 농담과 익살에서 해학과 풍자의 차원으로 나아가는 지점에도 환멸의 정서가 자리하고 있는 듯싶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1960년대 히피문화의 정서에 맥이 닿아 있는 듯하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적한 시골로 이주하고, 외계를 떠돌면서도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행성을 갈망하는 아서의 정서가 이를 대변한다.
1960년대 미국의 히피문화를 꽃피운 비트세대는 이른바 의식의 혁명을 통한 반문화운동으로 기성의 권위와 질서를 부정하고 조롱했다. 히피 공동체의 문화적 코드였던 마약과 프리섹스,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은 도피이자, 저항의 한 형식이었다. 그 근저에는 절망과 환멸의 정서가 자리하고 있다.
더글러스 애덤스는 49세의 이른 나이에 급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음모론의 시각에서 보면, ‘은하수 히치하이커’의 내용이 지구상에 더 이상 유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은하계 저작권을 주관하는 행성에서 교묘한 방법으로 살해한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오래도록 동경해온 행성을 발견하고 그리로 가기 위해 본인 스스로 지구에서의 생을 단축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뒤를 따를지도 모를 독자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지구를 떠나는 방법을 제시해 놓았다.
그 방법은 이렇다. "먼저 나사(NASA)에 전화해 협조를 구한다. 그들이 들어주지 않으면, 백악관이나 크렘린, 교황에게 직접 전화해 부탁해본다. 이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 지나가는 비행접시를 정지시킨 다음, 전화요금 청구서가 날아들기 전에 이 행성을 벗어나는 게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비행접시를 기다리기에 딱 좋은 시절이다.
태기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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