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감독님 앞에서…."
프로야구 삼성의 전용 연습장이 있는 경북 경산 볼파크에서 11일 만난 투수 배영수(24)는 선동열 감독과의 공동 인터뷰를 피하느라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다. 지난해 말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의 영광을 모두 선 감독의 은공으로 돌렸던 배영수는 선 감독과 눈빛을 마주하는 일조차 아직은 어렵기만 하다. 그에게 선 감독은 스승이기 이전에 우상으로 남아있는 듯했다.
"뭐, 사제관계라고 할 것도 없는데." 선 감독은 사제의 인연을 들려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겸연쩍은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배영수와 선 감독이 사제 관계를 맺은 것은 고작 1년. 선 감독이 지난해 삼성의 수석코치로 부임하면서부터다. 하지만 두 사제간 결연(結緣)의 과정은 더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도 선동열처럼 최고의 투수가 돼야지.’ 할머니 밑에서 두 살 위 누나와 자라면서 고단하게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던 까까머리 고교 시절 배영수는 라커룸에 붙여둔 선 감독의 사진 앞에서 늘상 이를 깨물었다.
배영수는 프로 데뷔 3년째이던 2002년 겨울 하와이 스프링캠프에서 "공격적인 피칭에 늘 당당한 표정이 멋있기만 했던 선동열 아저씨"를 처음 만났다.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으로 각 구단을 돌며 순회코치 역할을 하던 선 감독은 "많은 투수 중에서 유독 배영수가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유연성도 뛰어나고 기본기도 잘 배운 데다 무엇보다 성실한 자세가 돋보여 잘 만들면 ‘물건’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설명이다. 선 감독은 배영수에게 투구 요령과 함께 이례적으로 자신이 입었던 운동복과 스파이크를 물려주었다. 그 때 선 감독으로부터 받은 뜻밖의 선물은 배영수에겐 보물 1호다. "제가 복이 많은 거죠." 지난해 선 감독의 삼성행은 배영수에게 둘도 없는 행운이었다.
동계 훈련 기간 혹독한 ‘3,000개 투구’로 담금질을 한 배영수는 4월 한달 극심한 슬럼프를 자신과의 특별훈련을 마다하지 않았던 선 감독의 애정으로 극복하면서 B급 투수의 허물을 완전히 벗었다.
선 감독은 실수에는 너그럽지만 원칙에는 엄격한 지도자다. "패전투수는 눈감아줘도 게으른 선수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이 선 감독의 지론. 선 감독은 또 마운드에 올라가 위기에 몰린 투수에게 "맞아도 좋으니 마운드에서는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가장 자신있는 공을 던져라"고 주문하는 스타일이다. ‘새가슴’소리를 듣던 배영수는 그런 선 감독으로부터 무한한 자신감을 충전받았다. 배영수는 선 감독의 분신이기를 원하고 있다. 마운드에서 배영수는 라커룸의 빛바랜 사진으로 각인돼 있는 ‘선동열’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공을 뿌렸다고 했다. 이제 배영수에게 스승 선동열은 뛰어넘어야 할 또 다른 목표다. "선 감독의 대기록을 깨보고 싶다"는 배영수의 패기에 대해 선 감독도 "제자가 자기보다 앞서는 것을 싫어하는 스승이 있겠느냐"며 반색했다.
선 감독은 청년 배영수가 자만심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앞으로 2~3년 이상 꾸준한 성적을 내야 비로소 최고 투수가 되는 것"이라면서 "이번 전지 훈련에서 배영수를 유심히 지켜보겠다"는 선 감독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이를 의식한 때문인지 배영수도 17일 머리를 확 밀어버리고 18일 전지훈련장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경산=김병주기자 bjkim@hk.co.kr
● 선동열은
선동열 삼성감독은 그야말로 ‘태양’과 같은 존재다. 한국프로야구사는 그의 족적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꿈의 0점대 방어율 3회, 3년 연속 투수 3관왕, 44경기 연속 무패 등은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일본에 진출해 ‘나고야의 수호신’이 됐던 선 감독이 어떤 색깔의 야구로 ‘명품구단’을 디자인할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 배영수는
미완의 대기라는 꼬리표를 늘 달고 다녔던 배영수에게 지난 시즌은 잊지 못할 한해가 됐다. 다승왕과 승률왕 등 2관왕에 오르면서 최우수선수와 골든글러브 등 각종 영예를 독차지, 자신의 성공시대를 활짝 열어 젖혔다. 야구를 위해서라면 삭발에, 술과 담배도 일체 입에 대지 않는 독기와 집념이 배영수를 제2의 선동열로 이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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