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 살해범인 문세광(사진)이 사건발생 128일만인 1974년 12월20일 오전 7시30분 서울구치소에서 사형 집행 직전 진술한 내용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문세광은 교수대에 앉아 울먹이며 일본어로 박정희 대통령 부부에 대한 사죄와 어머니 아내 등 가족에 대한 유언을 남겼다. 이 내용은 당시 수사본부장(서울지검장)이었던 김일두 변호사가 녹음테이프로 보관하고 있다가 본보를 통해 한국어로 번역, 녹취록으로 공개했다.
집행관: 최후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이야기하시오.
문세광: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사형을 집행하는 것입니까.
집: 그렇습니다.
문: (울음소리) 나는 바보였습니다. 참으로 박 대통령과 육 여사에 대해서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재일동포로서 무엇하나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대통령에게 깊이 사과드립니다. 대통령에게 총을 겨냥해서 잘못했습니다. 나는 일본에서 조총련 놈들에게 속았습니다. 내가 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리 됐습니다. 참으로 대통령에게 미안합니다. 육 여사와 죽은 사람 곁에서 같이 살고 싶습니다. 나의 처에게 말을 전해 주십시오. 아직까지 젊은 나이이므로 재혼하여 제2의 인생을 걸어가도록 말해 주십시오. 장남은 2살이므로 형님 부부가 맡도록 전해주십시오. 어머니는 재혼했기 때문에 어머니대로 인생을 걷도록 말해 주십시오. 형제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하다고 얘기해 주십시오. 나는 사실 바보였습니다. (울음소리) 처에게는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리고 박 대통령과 국민에게 미안합니다. 나는 속았습니다. 미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만약에 한국에서 커왔다면 조총련에게 속을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참으로 바보였습니다. 사형을 당하여도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들과 처 사진을 보여 주십시오. 처에게는 될 수 있으면 육 여사 묘소를 참배하도록 말해 주십시오.
안형영기자 ahnhy@hk.co.kr
■ 당시 주한 서기관 근무 마치다 미쓰구 교수 회고
"문세광 사건 이후 본국으로부터 합의가 안되면 단교할 수도 있으니 철수를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고 전 직원이 언제라도 출국할 수 있게 짐을 싸둔 상태로 근무했습니다."
1974년 8월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당시 주한 일본대사관 정치부 1등 서기관이었던 마치다 미쓰구(町田貢·69·사진) 현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21일 본보 기자와 만나 당시 사건으로 양국 관계는 단교 직전까지 갈 정도로 악화해 당시 우시로쿠 도라오(後宮虎郞) 주한 일본 대사가 대사관 직원들에게 철수 준비를 지시했다고 회고했다.
마치다 교수는 "한달 동안 날마다 시위대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대사관을 포위하는 바람에 출근할 때 모든 직원들이 점심, 저녁 도시락을 싸 갖고 왔다"며 "본국에 상황을 전화로 보고하던 중 시위대가 던진 돌이 사무실 창문을 부수고 날아들기도 해 명령만 떨어지면 하루이틀 내에 철수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마치다 교수는 문세광 사건을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일본 내의 엇갈린 시각차라고 주장했다. 당시 일본 자민당 정부가 옛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지일파(知日派)’인 박 대통령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던 데 반해 일본 내 언론과 사회당 등 야당은 민주화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던 박 대통령을 반민주적인 독재정부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다 교수는 문세광 사건으로 양국의 긴장관계가 더욱 악화된 데에는 1973년의 김대중 납치사건도 연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네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전 주한 일본대사를 보증인으로 내세운 김대중씨의 체류를 허용한 데 대해 한국 정부가 불만을 갖고 있던 차에 문세광 사건으로 악화한 감정은 더욱 극에 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조총련에 대한 강한 단속을 요구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일본 내 유신정권에 대한 여론이 김대중 납치사건 등의 영향으로 워낙 좋지 않아 한국측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 대통령이 단교를 하지 못한 것은 관련부처 검토 결과 단교로 인해 한국이 입게 될 무역·관광 수지의 피해가 컸기 때문이란 첩보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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