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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2기 출범/‘자유 확산’명분 美일방주의 지속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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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2기 출범/‘자유 확산’명분 美일방주의 지속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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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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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 취임사 내용과 의미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국정 2기 취임사를 시종일관 흐르는 주제어는 ‘자유’였다. 그는 미국의 건국 이념인 자유를 국정 2기 목표로 끄집어냄으로써 재선 대통령은 누구나 그랬듯 자신의 집권에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려 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미국 안의 자유’가 아니었다. 그는 자유의 전세계적 확산을 통해 미국적 가치의 외연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서부 개척 시대 미국의 영토를 확장하듯 전세계에 미국적 규범을 전파하겠다는 복음주의자의 각오가 엿보인다. 여기까지라면 역사에서 멋진 지도자로 평가 받으려는 재선 대통령의 수사로 들린다.

그러나 자유 확산에 대한 그의 포부는 세계의 폭정을 종식하겠다는 적극적 행동 의지와 결합돼 있다. 여기에 바로 세계가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될 의미가 담겨 있다. 한 나라에 의한 자유의 일방적 이식은 곧 그것을 수용해야 하는 쪽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 목표는 주로 무력의 과업은 아니지만 필요할 경우 무력으로 우리 자신들과 우리 우방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1기 4년 동안 대외정책을 지배했던 ‘일방주의’가 자유의 확산이라는 명분으로 더욱 잘 치장돼 2기 집권에도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부시 대통령의 새 국정 목표에는 우려가 따른다. 인터넷상의 토론마당을 담당하고 있는 워싱턴포스트의 로버트 카이저 부국장은 부시 대통령이 제시한 이상과 실제와의 모순을 지적했다. 그는 "모든 국가와 문화에서 민주적 움직임과 제도의 성장을 추구하고 지원하는 게 미국의 정책이라면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이집트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사우디 아라비아 등 아시아와 중동의 가장 자유가 빈약한 나라들과 손잡는 것은 어떤가"라고 물었다.

북한엔 긴장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가 인준 청문회에서 제시한 ‘폭정의 전초기지’들을 떠올리면 자유의 확산이 몰고 올 충격파를 보다 분명하게 가늠할 수 있다. 부시의 연설에는 북한을 직접 지칭한 대목은 없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마음을 읽어온 라이스 지명자는 이미 북한을 쿠바 미얀마 이란 벨로루시 짐바브웨와 함께 자유의 손길이 미쳐야 할 ‘세계의 가장 어두운 구석’중 한 곳으로 지명했다.

이 점에서 지난해 통과한 북한 인권법은 바로 북한 정권에 경고를 전달하는 법적 장치가 될 수 있다. 탈북자와 북한 주민에게 구원과 자유를 돌려준다는 명분에 따라 미국이 ‘북한 인권법’의 조항을 적극 활용할 경우 북한 정권은 강력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자유의 확산’의지가 미국과 북한간 최대 난제인 핵 문제 해결을 더욱 꼬이게 할 수 있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 국내 전문가들이 본 취임사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0일 취임사에서 "자유의 확산(Spread of Liberty)이 시대의 소명"이라면서 미국의 안보와 다른 나라 민주주의의 성공을 연계했다. 이 같은 ‘자유확산론’은 한반도 등에서는 안보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외교안보연구원 미주부장인 김성한(金聖翰)교수는 "북미간의 대화가 가닥을 잡지 못할 경우 핵문제와 인권문제가 화학반응을 일으켜 한층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희대 임성호(林成浩)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 본 종교적, 도덕적인 선악의 개념으로 외교를 재단할 경우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전문가와의 문답을 통해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를 분석해본다.

Q: 자유의 확산은 부시 대통령이 처음 사용한 개념인가?

A: 그렇지 않다. 빌 클린턴 정부는 이른바 ‘민주적 가치론’을 내세워 "민주주의의 확장(Enlargement of Democracy)"을 외교정책의 목표로 삼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취임사에서 "미국인이 보유한 최강의 무기는 자유"라고 주장했다.

Q: 1기 부시독트린과는 무엇이 다른가?

A: 표현이 훨씬 유연해졌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악의 축 발언, 이후 국가안전보고서 등을 통해 군사적 선제공격을 언급했었다. 이번에는 이 같은 언급이 없을 뿐 아니라 미국의 가치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Q: 그렇다면 왜 논란이 되는가?

A: 일부 국가들은 1기 부시 정부가 군사주의적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다른 형태의 압박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적 잣대를 강요하는 문제도 있다. 일각에선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벨로루시를 거명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책에 도덕주의가 가미되면 적과 친구가 갈리고 전선이 분명해진다. 문제는 이같은 가치관이 단지 부시 대통령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지난 대선에서 도덕적 가치를 강조한 부시 대통령을 선택했다.

Q: 북한 핵문제에 대한 영향은?

A: 미국은 우선은 6자회담에 주력할 것이다. 외교적 노력이 소진돼 간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때까지 인내심을 보일 것이다. 인내심이 고갈될 조짐이 보이면 압박에 나설 것이다. 그 압박수단은 과거처럼 북폭(北爆)계획 등이 아니라 인권문제를 앞세운 체제변형운동이 될 가능성이 크다.

Q: 북한 인권법과의 관계는?

A: 북한 인권법의 시행 일정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의 성패와 시점이 맞물려 있다. 4월에는 미국의 북한인권대사가 임명되고, 5월부터 화려하게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자유 아시아, 미국의 소리 등 대북방송에 연간 400만달러, 탈북자 관리에 연간 2,000만달러 등 4년간 9,600만달러의 예산이 확보돼 있다. 북한은 큰 압박을 느낄 것이다. 선제공격 독트린이 칼로 찌르는 것이라면, 자유확산론은 주먹으로 맞은 듯한 충격을 느낄 수 있다.

Q: 한미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A: 부시 대통령은 자유공동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새로운 독트린에 따라 동북아에서는 한미일이 한편이고 중국이 상대편이라는 편가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앞으로 한미동맹관계를 설계하는 데 있어 중국변수를 어떻게 다루는가가 핵심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특히 주한미군의 주둔목적을 재정의하는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 아울러 한국은 대북관계에서는 북한을 최대한 설득하는 한편, 북한 인권법 시행을 최대한 축소하고 늦추는 방향으로 미국과 교섭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리=이동준기자 djlee@hk.co.kr

■ 취임사 요지

"공산주의의 붕괴로 수년간 조용한 안식의 날들을 보낸 이후, ‘불의 날(a day of fire)’이 찾아왔다. 증오와 분노의 통치를 파괴하고 압제자들의 허구성을 폭로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바로 자유의 힘이다. 자유가 없으면 정의도 인권도 없다.

미국의 자유는 다른 나라에서의 자유의 성공에 달려 있다. 미국의 평화는 전세계적인 자유의 확대에 다름 아니다. 모든 국가와 문화에서 민주운동과 민주적 제도가 자리잡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다. 미국은 무한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결코 폭정과 절망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고 억압자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강제적으로 우리 정부의 스타일을 (다른 나라에)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폭정의 종식이란 목표는 수 세대에 걸쳐 추진해야 할 어려운 임무이다.

미국 국내적으로는 주택구입, 퇴직금 개인관리 등을 통해 정부가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관리하는 ‘소유주의 사회(Ownership Society)’를 구축, 결핍과 공포에서 벗어나 더 많은 자유를 누리도록 하겠다".

■ 대북정책 내달 연두교서 봐야/"美체제 강요하지 않을 것" 정부, 부시 발언에 기대감

청와대, 외교통상부 등 정부 당국자들은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가 자유와 민주주의, 도덕을 강조하는 기존 정치철학에 바탕을 두었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론에 약간의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9·11 테러 발생을 계기로 보복, 군사력 활용 등에 강조점이 있던 과거 연설과는 다른 인상을 풍긴다는 게 당국자들의 반응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취임사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대목은 자유 확산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의지 보다는 군사행동 등을 배제하려는 듯한 접근 방식"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미국은 우리 정부의 형태를 내켜 하지 않는 나라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데 유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숙 외교부 북미국장도 "미국 체제를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의 체제를 선택하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말한 것에 주목한다"며 "부시 대통령이 또 동맹국과의 관계 강화를 언급한 것은 대북 정책에서 한미간 긴밀한 공조를 유지해나가겠다는 뜻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외교부 실무진들은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매우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한 당국자는 "올해는 부시 대통령에게 2기 첫해인 동시에 대통령 5년차인 해"라며 "지난해 구상하고 가다듬었던 대북정책이 올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6자 회담 틀에서 평화적으로 북핵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올해에도 추진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는 "부시 2기 대북정책은 이번 취임사가 아니라 내달 초 발표된 연두교서에서 보다 선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 김승일 특파원 취임식 참관기

20일 아침 미 국회 의사당으로 가는 길은 흥겹다. 갑자기 뚝 떨어진 날씨도 저마다 노란색, 빨간색, 푸른색 입장표를 쥐고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식장으로 가는 청중들의 발길을 더디게 하지는 못했다.

성조기로 치장한 20대 여성,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몸을 흔드는 텍사스의 할아버지,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연신 의사당을 가리키는 조지아 주의 한 어머니. 겹겹이 둘러싼 경찰의 제지를 받고 바리케이트를 빙빙 돌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미국의 축제에 참가한다는 그들의 기쁨을 누를 수 없었다.

그렇게 의사당 앞뜰 펜실베이니아 가를 가득 메운 10만여 명의 청중들은 부시 대통령의 등장을 "와"하는 함성으로 맞았다. 미 대통령의 취임식은 통합의 자리라는데…. 지난 한해 미국 대선의 현장 곳곳에서 목격했던 반목과 대립과 분열의 모습들을 떠올리다가 괜히 머쓱해진다.

"나는 미국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내 능력의 최선을 다해 미국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하고 보호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부시 대통령이 낮 12시 윌리엄 렌퀴스트 연방 대법원장 앞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는 동안 미국인들의 갈라졌던 마음은 다시 하나로 모아지는 듯했다. 단상의 민주당 의원석에는 지난 대선 때 부시 타도를 외쳤던 존 케리 상의 의원의 모습도 보였다. 케리 의원은 간간히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었지만 부시 대통령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인의 이상과 용기를 되살리는 것으로 상처 난 미국을 추스르려고 애썼다. 그는 ‘자유’라는 표현을 27차례나 써가며 "미국을 보호하고 이상을 전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한 순간 부시를 반대하는 외침이 식장의 정적을 깼지만 이내 청중들의 "USA" "USA" 연호 속에 묻혀 버렸다. 취임식장은 그렇게 미국의 갈등과 분열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 갔다.

그러나 취임식장의 통합은 미국의 전부가 아니었다. 취임식장은 나서는 순간 또 하나의 미국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은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 방금 미국의 지도자임을 선서한 부시 대통령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하는 시위대가 취임식장 밖 거리 곳곳을 메웠다.

부시 대통령의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펜실베이니아가의 도로 한 켠에는 이라크 전쟁의 참화를 상징하는 관들이 놓여 있고 아부 그라이브 고문 피해자 복장을 한 시위대가 그 지위를 맴돌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차량이 통과하는 순간 환호와 야유의 고함이 맞부딪치면서 워싱턴의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 부시 취임 각국 반응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제2기 취임식을 지켜본 각국은 대부분 미국에 대한 우호 관계를 재확인하고 국제 공조를 통한 현안 해결에 강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일부 국가들은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 정책에 강한 우려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프랑스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외무장관은 "프랑스는 (미국과의) 관계 진전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맹은 복종이 아니다. 상호 존중에 입각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이며 미국 일방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부시는 군사력 사용만이 테러와 싸우는 유일한 길이 아님을 배웠다. 좀더 합의를 통한 접근 방식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미국이 국제 공조 속에서 세계 평화와 안정에 활발하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외교부 성명을 통해 "중국은 테러를 분쇄하기 위해 공동 노력을 조성하려는 국제사회를 항상 지지해왔다"고 밝혔다. 러시아 역시 외무부 성명을 통해 "양국 정상은 우호적이고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며 양국간 협력 관계 강화를 당부했다.

분쟁 지역의 국가들은 서로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셰이크 라시드 아흐메드 파키스탄 정부 대변인은 미국을 가장 친한 친구라고 부르면서 "부시 대통령이 카슈미르 분쟁 해결에도 더 노력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도 외무부 성명을 통해 "최근 쓰나미 구호 운동이 미국과의 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 지명자가 언급한 ‘폭정의 전초기지’국가중에 하나인 이란의 하타미 대통령은 미국의 무력사용 가능성에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 우간다를 방문중인 그는 "미국은 이라크 문제가 너무 복잡해 다른 나라 공격을 생각할 여유가 없을 것"이라며 "만일 특정 국가가 공격해 오면 그들을 막아낼 힘이 있다"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또 이라크 저항세력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는 부시 대통령의 취임에 맞춰 "압제자 미국의 사기를 꺾어놓을 것"이라며 제2의 성전에 돌입했음을 선언했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 불안한 미국… 맨홀 뚜껑까지 용접/ NYT "취임식 행렬은 고대 그리스 장갑보병"

"취임식 행렬은 팔랑크스(Phalanx)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일 취임식 가두행렬에서 장갑 리무진을 타고도 모자라 무장 트럭, 경호승용차 등 수십 대 차량에 둘러 쌓인 모습을 뉴욕타임스는 고대 그리스 무적의 장갑보병 밀집방진인 팔랑크스에 빗대 야유했다.

미국의 역대 취임식에서 신임 대통령들은 전임자들과 함께 백악관과 의회를 잇는 펜실베이니아 대로를 환호에 답하며 여유 있게 걷는(leisurely stroll) 게 관례였다.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라는 특별한 사정 탓에 별 행사 없이 비밀리에 백악관에 입성했지만, 대통령 취임식은 미국 민주주의를 세계에 과시하는 커다란 선전 무대였다.

특히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1977년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이 길을 끝까지 걸어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97년 재선 취임식 때 아내 힐러리, 딸 첼시의 손을 잡고 펜실베이니아대로에 섰다.

그러나 이번 취임식에선 9ㆍ11 이후 첫 대통령 취임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경호에만 공을 들였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언론들은 '전례 없는' '역사상 가장 삼엄한'등 표현을 동원했다. 부시 대통령이 입만 열면 "더 안전한 세계를 만들 것"이라고 큰소리 쳤지만 정작 미국의 심장부에서도 안전 문제로 전전긍긍한 것이다.

실제로 도심의 차량 금지 구역만 100블록이었고, 기나긴 통행금지선과 검색대, 항공 금지 구역, 일반 항공기 이착륙 금지, 지하철역 봉쇄, 저격수ㆍ스팅어미사일ㆍ폭발물 탐지견 배치 등 철통경비가 이뤄졌다. 심지어 도심의 맨홀 뚜껑까지 다 용접했다. 그러고도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 다 와서야 겨우 3블록을 걸었다.

사정은 다르지만 부시 대통령은 2001년 첫 취임식 때도 차의 속도를 높여 도망치듯 퍼레이드를 끝냈다. 당시 플로리다주 부정투표 의혹 및 재검표 시비로 분개한 민주당원들이 차에 계란을 던지는 등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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